예수님 만나도 서로 통하진 않는 사람 (요한복음 10:1~10)

📖 요한복음 10:1~10시즌II_신약요한복음-2

설교 요약

만남과 통함의 중요성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단순히 만나는 것을 넘어 서로 '통하는' 지점이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같은 고향이라면 더욱 친밀감을 느낍니다. 이는 동병상련이나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것과 같이, 서로의 처지나 관심사가 통할 때 관계가 깊어짐을 의미합니다. 만약 통하는 부분이 없다면, 아무리 자주 만나더라도 관계는 발전하지 못하고 불발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진정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통하는' 부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과의 '통함'에 대한 오해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말하지만,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찾는다면 만남 자체는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남 이후의 파격적인 변화나 실효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님과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스타일이 바뀌고, 예배에 참여하며 여러 활동을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만남이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과 서로 통하는 부분이 없기에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통로인데,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도 주고받는 '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참 목자와 거짓 목자, 그리고 양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성도의 관계를 목자와 양에 비유하셨습니다. 문을 통해 들어가는 목자는 참 목자이고, 담을 넘어가는 자는 절도나 강도입니다. 당시 목자들은 여러 양떼를 한 우리에 모아두었다가 아침에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면, 각자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 인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참 목자의 정체성을 밝히시고, 자신의 양은 이미 정해져 있음을 시사하십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예수님의 양이 되는 것은 만남 이후의 믿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자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라는 유일한 공통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고, 예수님은 그 하늘에서 이 땅으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유일한 관심사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셨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사 역시 '하늘'이어야 합니다. 마치 이역만리 타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끼리 고향이라는 공통점으로 통하는 것처럼, 예수님과 우리가 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점은 바로 '하늘'입니다. 하늘에 대한 관심, 즉 천국과 하나님 아버지의 있음과 좋음에 대한 느낌이 우리 안에 있어야 예수님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세상의 우선순위와 불통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여전히 건강, 돈, 진학 등 세상적인 문제들을 우선시한다면, 예수님과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만났지만 통하는 부분이 없었기에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당장 느껴지지 않더라도, 생각과 이론으로라도 기억하며 십자가를 붙잡으려 할 때 비로소 예수님과 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의식하는 동안에는 예수님과 공통점이 없기에 전혀 통할 수 없으며, 이는 목자가 아닌 절도와 강도에게 끌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통함'의 회복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양으로 부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변수를 주셔서라도 마음을 세상으로부터 떠나게 하시고, 이론과 생각으로라도 십자가를 붙잡게 하십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는 자들이 예수님의 양이며, 예수님과 통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과 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점은 '하늘'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하늘과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이 첫 번째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과 통할 때, 예수님은 여러분의 목자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통하는 것은 세상 것들에 대한 있음과 좋음에 끌려다니는 나를 십자가에서 죽임으로써 가능합니다. 예수님과 통하는 것이 곧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예수님과 통하지 않으면 만남은 불발이 되어버립니다."

불평 없이 인내하라는 말씀처럼, 예수님과 통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우선순위를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주권의 죽음이며, 예수님과 진정한 관계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본문 도입부

요한복음 10장 1절부터 10절까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예수님 만나도 서로 통하진 않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예수님 만나도 서로 통하진 않는 사람” 예수님을 만났지만 서로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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