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주체성의 화형식이 일상인 삶 (요한복음 18:12~27)
설교 요약
예수님, 아버지 주체성의 형상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주체성이 이 땅에 눈에 보이도록 형상을 입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곧 하나님 아버지의 주체성에 대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유일한 분이며, 스스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실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십니다. 인간이 타락한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주체성을 흉내 내어 스스로 존재하고 말하고 행동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주체성에 의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결박하는 행위
예수님을 결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체성을 우리의 일상에서 격리시키고 분리시키는 행위입니다. 마치 미워하는 대상을 화형식으로 없애버리듯, 우리는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주체성을 우리의 삶에서 추방합니다. 하나님은 75억 인구 각자의 머리카락 숫자와 빠지는 때까지 계획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체성을 감옥에 가두듯 격리시킵니다.
하나님의 주체성을 심문하고 재판하는 삶
대제사장 안나스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뜻을 심문하고 재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현재 주어진 상황을 부족하게 여기고 더 나은 미래를 바라며 하나님의 주체성을 난도질합니다. 더 나은 상황을 기준으로 현재를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며, 이는 창조주의 독생자를 심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결국 하나님의 주체성을 화형시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따위 식으로 나의 삶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주체성은 불태워 죽여야겠다"는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윗사람을 따르는 아랫사람의 태도
대제사장 집안의 아랫사람이 예수님을 손으로 쳤던 사건은 세상의 윗사람을 따르는 아랫사람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직원들이 사장님 앞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유보하고 사장님의 주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의 윗사람을 섬기며 자신의 주체성을 팔아넘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사장님 위에 계신 하나님의 주체성을 볼 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주체성을 사장님의 주체성보다 아래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체성에 뺨을 치는 모욕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한해서만 윗사람을 공경할 수 있습니다.
이론에 머문 믿음과 베드로의 부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이는 그의 믿음이 이론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압박감 속에서,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는가?'라는 위협감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내 삶을 이끌어 가신다'는 믿음보다 커질 때 우리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이는 아는 것에 대한 거절, 즉 알지만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감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벌거벗겨지고 살이 찢기는 형벌을 앞두고도 하나님의 주체성이 결정하셨음을 믿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보다 나은 상황에 있다면 감사는 의무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방식이며,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체성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입니다. 온전한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기쁨에서 나오는 감사가 가능해지며,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아버지와의 친분이 더욱 두터워질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일상에서 하나님의 주체성을 화형시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 ❓하나님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왜 죄악인가요?
- ❓세상에서 윗사람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주체성을 모욕하는 행위가 될 수 있나요?
-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나요?
-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기쁨에서 나오는 감사를 드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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