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17:1-16) 절망보다 더 절망적인 희망

📖 욥17:1-16시즌I_구약욥기-1

설교 요약

희망의 역설

새해를 맞아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지만, 진정한 희망은 무엇인지 묻지 않습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으면 오늘의 삶은 무의미하다는 말은 맞지만,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이처럼 현세 경계 안에서의 희망은 오히려 더 큰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욥의 절망, 세상의 희망

욥은 자신의 날과 계획,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모두 끊어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밤을 낮 삼고 빛이 어두움에 가깝다는 세상의 희망적 메시지를 거부하며, 스올(음부)을 자신의 집으로 삼고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현세 경계 안에서의 모든 희망이 끊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현세적 회복을 희망하지만, 욥은 이를 거부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선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현세의 어려움을 극복하라고가 아니라, 현세에서 바라는 바가 끊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면에서는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현세 경계를 넘어 하나님께로 시선을 연장합니다. 그는 하나님만이 자신을 증명해 줄 유일한 보증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로 향하는 시선은 진정한 믿음의 시작입니다.

절망의 참된 의미

'절망'은 바랄 '망'자가 끊어진 것입니다. 현세 경계 안에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시선이 현세 경계를 넘지 못하고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욥처럼 현세 경계 안에서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어 바라는 바가 끊어진 절망은, 오히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기가 막힌 희망이 됩니다.

십자가와 절망의 희망

자살은 현세 내에서 바라는 바가 끊어질 때 하나님이 없는 상태입니다. 반면, 욥과 같이 현세에 대한 모든 희망이 끊어진 상태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직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야말로 절망보다 더 절망적인 희망입니다. 카타콤의 성도들처럼 세상에 대한 절망 속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참된 희망을 소유하게 됩니다.

십자가 복음의 핵심

새해에 경제적 성공이나 자녀의 번영을 바라는 것은 절망보다 더 절망적인 희망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나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 대해 완전히 절망하고 바라는 바가 끊어진 상태가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세 경계 안에서의 절망이 하늘의 아버지를 소유하는 희망이 됩니다.

본문 도입부

욥기 17장 1절부터 16절까지 절망보다 더 절망적인 희망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욥기17장 말씀중심으로 <절망보다 더 절망적인 희망> 이라는 좀 어려운 제목 같지요? 똑 같은 말이 반복되면 좀 이해하기가 어렵게 느껴집니다만 어려울 게 하나도 없지요. 희망이 절망보다 더 절망적인 그런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을 하는데 그 희망 자체가 너무 절망적이어서 차라리 희망을 안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희망보다 더 희망적인 절망이 있고, 절망보다 더 절망적인 희망이 있습니다. 절망하는데 그게 사실은 내용적으로는 아주 희망찬 상황이고, 또 희망하는데 그것을 희망함으로서 더 절망적이 되어 버리는 그런 상황이 있다는 것이에요. 절망함으로 더 희망적이 될 수 있고, 희망함으로서 더 절망적이 될 수 있는데 어떤 내용의 말일까요? 여러분! 새해가 되면 우리가 늘 '희망'이라는 단어를 별나게 많이 듣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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