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25:1-6) 거룩한 추방
설교 요약
추방의 섬뜩함과 성경적 의미
'추방'은 공동체나 특정 영역에서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쫓겨나는 일이다. 이는 감옥에 갇히는 것과 같은 사회적 격리이며, 때로는 '귀신을 몰아낸다'는 표현처럼 인격의 공간에서 악한 존재를 쫓아내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을 삶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거룩한 추방'**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속에서도 일어나는 비극이다.
빌닷의 논리와 숨겨진 불신앙
빌닷은 하나님이 주권과 위엄을 가지시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다스리신다고 말한다. 그의 말 자체에는 틀린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을 인간의 삶과 분리시키려는 무서운 불신앙이 내포되어 있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벌레 같고 구더기 같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그 거룩함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형성을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평화
로마서와 누가복음은 빌닷의 주장과는 달리,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벌레 같은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관계가 형성되고 평화(샬롬)가 땅에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영광'은 안 보이던 하나님이 인간에게 조명되는 것이며, '땅에 평화'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 배불러져 서로 다투지 않고 만족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력이 하늘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 땅에 실현됨을 보여준다.
거룩한 하나님, 위험한 하나님?
빌닷의 신앙은 삶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하나님을 모셔 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는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우리의 삶에서 쫓아내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대로만 움직이시지 않기에 오히려 '위험한' 분이라고 말한다. 모세의 40년 광야 여정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소원대로만 살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하시기에 우리는 자기 생각과 주장을 내려놓아야 한다.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죽음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 우리는 벌레 같고 구더기 같은 '나'를 부인하고 죽여야 한다. 자기-주권의 죽음 없이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다. 죽기가 싫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삶에서 추방하지만, 이는 가장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진정한 평화는 높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벌레 같은 '나' 사이에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죽고,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화평이 임한다.
거룩한 추방을 끝내라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찾으면서 정작 하나님을 추방하는 모순된 신앙생활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돈, 자식, 남편 등 세상의 문제에 매몰되어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은 가장 불행한 거룩한 추방이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음을 인정하고, 더 이상 자신의 생각과 주장으로 까불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도토리 키 재기이며, 납작 엎드려 죽을 때 진정한 화평이 이루어진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하나님을 삶에서 추방하는 '거룩한 추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 ❓빌닷의 신앙이 왜 '불신앙'으로 간주되는 것인가요?
-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평화(샬롬)'는 어떤 의미인가요?
- ❓하나님이 '위험한 분'이라는 표현은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나요?
-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죽음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왜 필요한가요?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