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4:1-21) 하나님은 우리의 어디를 보실까?

📖 욥4:1-21시즌I_구약욥기-1

설교 요약

엘리바스의 오해: 죄와 고난의 현세적 인과론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을 그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하며,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라고 묻습니다. 이는 현세적인 인과응보론에 기반한 생각으로, 세상에서의 실패나 고통을 곧 죄의 결과로 보는 불신앙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궁극적인 가치의 소재를 이 세상 안에 두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돈, 건강, 자녀 등 세상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 때, 그것을 잃는 것은 죄의 결과로 해석됩니다.

진정한 멸망은 영적인 것

이 세상에서 사업이 망하거나 자녀를 잃는 것이 진정한 멸망이 아닙니다. 진정한 멸망은 이 세상에서 아무런 고난 없이 잘 살다가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문제는 욥의 고난을 이 세상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며, 욥을 더 이상적인 단계로 이끌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간과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 죄의 완전한 해결과 사랑의 징계

우리의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겪는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듯, 우리를 향한 더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는 우리가 더 나은 모습, 즉 하나님 보좌 앞에서 기뻐 뛰는 자녀가 되도록 이끄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시선: 보좌 앞에서 뛰어노는 미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보좌 앞에서 주님과 함께 기뻐 뛰며 노는 우리의 미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이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세상적인 것을 빼앗으시고, 막으시고, 실패하게 하시며, 아프게 하십니다. 세상적으로는 망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려는 형통의 길입니다.

가치의 소재: 세상 너머의 궁극적 기업

우리가 이 세상 안쪽에 궁극적인 가치를 둔다면, 세상에서의 실패는 곧 멸망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가치가 이 세상 너머, 즉 하나님의 보좌에 있다면, 세상에서의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세상 경계 안쪽에 가치를 두었기에 욥을 오해했지만, 욥은 비서의식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정직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한계를 넘어 당신 자신을 기업으로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위험한 형통: 세상적 성공과 영적 실패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재벌 총수들의 엄청난 세상적 성공은 영적으로 볼 때 오히려 불통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고 세상에서 생을 마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형통이 아닙니다. 반대로, 몸이 아프고 망가지는 고통 속에서 주님께 나와 십자가를 붙잡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형통입니다. 왜냐하면 이 현세를 넘어선 자리에 우리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도입부

욥기 4장 1절부터 21절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어디를 보실까? 오늘 읽은 말씀중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어디를 보실까?> 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디를 보실까'TV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아주 대담해졌습니다. 무엇에 대담해졌느냐? 저희 젊었을 때 만해도 금기시했던 것을 서슴없이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예 중에 종종 서로 많이 묻고 이야기 하는 것 중에 이성을 볼 때에 특히 남자들에게 묻지요. ‘여자를 볼 때 어디를 먼저 보느냐?’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들 신경 안 쓰는 대답들을 합니다만, 또 어떤 분들은 ‘여자의 엉덩이를 봅니다.’라는 조심스러운 말들을 쉽게 내 뱉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자를 볼 때 먼저 어디를 보십니까? 또 남자를 볼 때 먼저 어디를 보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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