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차 위에 새차 사는 합리적 바보 (욥기 11:1~20)

📖 욥기 11:1~20시즌II_구약욥기-2

설교 요약

인간의 주체성과 하나님의 주체성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 상태는 자신의 판단력을 활성화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과 소원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이는 세상에 대해 소원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가진 판단력과 소원의 능력은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즉, 우리의 주체성은 낡은 75마력 파사트와 같고, 하나님의 주체성은 신형 300마력 시트로엥과 같습니다. 이 낡은 파사트는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발의 오해와 욥의 신앙

소발은 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합니다. 그는 참혹한 고난이 임했다면 분명 잘못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한다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소발은 욥이 하나님의 높고 깊은 지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오해하지만, 욥은 이미 인간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범주 내에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체성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욥은 복을 주시거나 가져가시거나 그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체성으로 사는 삶

하나님께서는 때로 자신의 행하시는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주시지만, 아브라함의 삶처럼 주체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삶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자신의 능력과 판단으로 이해하고 추진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하려 하지만, 욥은 작은 부분에서도 하나님의 주체성을 인정하며 살았습니다. 마치 300마력 시트로엥을 가진 사람이 12년 된 75마력 파사트를 탈 이유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체성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데 굳이 우리의 주체성을 활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합리적 바보가 아닌 욥처럼 사는 길

소발과 같은 합리적 바보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주체적으로 살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에서만 하나님의 주체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작은 부분의 영역에서까지도 하나님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고, 나의 죽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세상의 현상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일에 대해 죽었다는 생각을 밀고 나갈 때, 하나님의 주체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바라봄과 하나님의 주체성 적용

매 순간 십자가 바라보기를 잊지 않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세상일에 대해서는 죽은 자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일에 마음이 기뻐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만 기쁨이 가능하기에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죽었음을 인정할 때에만 하나님의 주체성이 임할 수 있고, 그렇게 하나님의 주체성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장 사소한 일에까지 하나님의 주체성을 적용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욥기 11장 1절부터 20절까지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헌차 위에 새차 사는 합리적 바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