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14:1-32) 높은 사람, 통 큰 사람

📖 사14:1-32시즌I_구약이사야-1

설교 요약

'높은 사람'의 본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세상에서 '높은 사람'이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영화사 사장의 폭력적인 행태나 알 카포네의 잔혹함이 이를 보여준다. 대통령조차도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관철시키지 못할 때 '높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곧 '높음'의 척도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높음'은 종종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불만과 높아지고 싶은 욕구는 결국 자기-주권의 죽음을 요구하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성전 파괴범: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욕망

진정한 '높은 사람'은 하나님을 회장님으로 모시는 세상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제쳐놓고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자, 즉 '성전 파괴범'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곳이며, 성전의 핵심은 번제이다. 번제는 하나님을 회장님으로 모시기 위해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을 죽이는 행위이다. 이 번제를 없애거나 왜곡하는 것이 성전 파괴이며, 이는 곧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계명성의 모습과 같다. 바벨론 왕은 이러한 성전 파괴의 상징이며, 그의 높아지려는 시도는 결국 음부로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앗수르와 블레셋: 성전으로의 회귀를 위한 막대기

앗수르와 블레셋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하신 '막대기'였다. 그들의 역할은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자신의 '높아지려는 욕망'을 뉘우치며 번제를 통해 자신을 죽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하나님은 결국 바벨론을 통해 성전을 뭉개버리도록 허락하셨다. 이는 성전이 하나님의 역사관의 핵이며, 선민의 삶의 중추였음을 보여준다.

십자가 사건: 성전의 이동과 새로운 의미

구약 시대 성전의 핵심은 번제를 통한 하나님의 높아지심이었다. 오늘날 성전은 십자가 사건으로 옮겨졌으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가리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 즉 성전 파괴범의 모습을 죽이는 십자가 번제의 장소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성전 파괴범의 기도와 같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 번제를 통해 내 감정, 내 의지, 내 계획을 죽여야 한다.

통 큰 사람: 십자가 번제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

'높은 사람'이 되려는 욕망은 성전 파괴와 같으며, 이는 결국 파멸로 이어진다. 반면 '통 큰 사람'은 자신의 높아지려는 욕망을 포기하고 번제를 통해 완전히 죽어 '제로'가 될 때 된다. 마치 넓은 파이프라인처럼 하늘의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듯, 통 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역사가 쏟아져 들어온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심으로써 통 큰 분이 되셨고, 다윗 역시 마음대로 하지 못했기에 통 큰 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불평 없이 인내하라는 것은 바로 이 통 큰 사람이 되는 과정이다.

축복을 받는 그릇: 통이 커져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높아지려 할 때, 우리의 '통'은 좁아진다. 좁은 통으로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감당할 수 없어 오히려 파멸에 이를 수 있다. 자녀, 사업 등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성전 파괴범의 모습이며, 이는 계명성이 음부에 떨어지듯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진정한 축복은 통 큰 자에게 임한다. 십자가 번제를 통해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망이 죽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흘러들어와 우리 삶에 진정한 복지가 주어진다. 번제는 축복을 위한 테크닉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본문 도입부

이사야 14장 1절부터 32절까지 높은 사람, 통 큰 사람오늘 이사야 14장 말씀중심으로 <높은 사람, 통 큰 사람> 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우리는 12-20절 말씀만 읽겠습니다. ‘높은 사람, 통 큰 사람’오늘 본문 우리가 읽은 부분은, 앞에서 바벨론의 멸망 예언을 우리가 함께 듣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또 다시 바벨론 왕에 대한 심판이 예언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여러분! 월드컵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정말 민망할 정도로 확연하게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16강에 올라갔을 때는 전국의 열기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던 것 같았는데 16강에서 지니까 그냥 팍 사그라집니다. 우리가 16강에서 몇 게임 하는 동안에, 16강에 올라와서도 그렇고 예선에서도 그렇고 4게임인가 했습니까? 그리고 2게임을 남미 사람들하고 합니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입니다. 우루과이나 아르헨티나가 사실은 우리나라와 지구상에서 대척점에 있는 나라들이에요. …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