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에 손대다, Touch Sun (이사야 18:1~7)
설교 요약
태양에 손대다: 위험한 유혹
태양 표면 온도는 6,000도에 달하며, 640만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도 1,300도에 이릅니다. NASA의 '태양에 손대다' 프로젝트는 이러한 극한의 대상에 접근하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이는 손대면 죽는 위험한 대상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과 도전 정신을 상징합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곧 판단하는 것, 즉 나의 일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판단으로 죽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태양에 손대라고 유혹합니다.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가는 삶은 곧 손대서는 안 되는 것들에 마음을 대는 것입니다.
선악과와 판단: 마음의 죽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말은 육체로 접촉하는 모든 사건과 대상에 대해 절대로 마음으로 손대지 말라는 뜻입니다. 육체로는 접촉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으로는 나의 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판단하지 않으면 나의 일이 되지 않으며, 이는 곧 손댈 수 없는 태양과 같은 존재로 여겨야 함을 의미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은 판단함으로 죽었습니다. 태양에 손대면 죽는 것처럼, 판단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죽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됩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의 일생은 스스로 판단하며 태양에 손대는 삶입니다.
에덴의 불 칼: 기쁨 추구의 역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난 후, 에덴동산 주변에는 불 칼이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에덴은 곧 기쁨입니다. 사업, 자녀, 연인 등 세상에서 기쁨을 추구하다 보면 에덴으로 접근하게 되지만, 불 칼로 지켜진 에덴에 닿으면 마음이 불에 타게 됩니다. 배우자, 자녀, 사업 때문에 속이 새까맣게 타는 경험은 바로 이 불 칼에 닿는 것입니다. 마음의 공백은 채워져야 하지만, 기쁨을 추구할수록 마음은 불 칼에 닿아 타버립니다. 마귀는 우리의 인생 프로젝트를 ‘태양에 손대기’로 바꾸었지만, 하나님은 본래 ‘태양에 손대지 않기’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손대지 않아야 하나님이 손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와 구스: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
이사야 18장의 구스에 대한 예언은 당시 앗수르의 침공 위협 속에서 불안해하는 구스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구스는 남 유다와 연합하여 앗수르에 맞서려 했지만, 이사야는 오히려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을 더위에 운무가 사라지듯 조용히 앗수르를 지켜보고 계셨고, 때가 되면 포도나무 가지를 베듯 앗수르를 멸절하실 것이라 예언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성전 기도를 통해 앗수르의 산헤립 군대가 멸절하고 앗수르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을 보여줍니다. 남 유다의 승리는 앗수르와 대적하던 구스에게도 승리였습니다. 이 모든 승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둔 성전, 곧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마음의 번제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침공 위협 앞에서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이는 앗수르와 자신의 마음이 접촉되는 것을 막았던, 즉 마음으로 손대지 않았던 것입니다. 구스와 앗수르 사이에 남 유다가 있었듯이, 히스기야와 앗수르 사이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앗수르와 직면했지만, 성전 기도를 통해 마음에는 하나님을 모셔 들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받아들인 마음을 번제단에서 죽임으로써,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며 자신을 죽였듯이, 히스기야도 앗수르를 받아들인 마음을 죽였습니다. 성전의 상번제처럼, 세상에 붙잡힌 마음을 죽여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 하나님과의 연합
우리는 육체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지만, 육체가 접하는 대상에 마음까지 접촉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 접촉해야 하며, 하나님만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육체가 접촉하는 일들에 대해 일하실 수 있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자멸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손대실 것입니다. 피조세계에 사는 동안 마음이 피조물에 접촉하면 죽습니다. 오직 마음이 접할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가 판단하면 마음은 타오르고,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대로 마음이 쾌청하려면 육체로 접촉하는 것에 마음의 손을 대지 않아야 합니다. 판단하면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마귀의 프로젝트 vs. 하나님의 프로젝트
마귀는 우리 마음에 계속해서 ‘태양에 손대라’고 유혹합니다. 이는 타 죽으라는 소리입니다. 자녀, 사업, 건강 등 세상의 모든 일에 마음으로 손대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지글지글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마귀의 인생 프로젝트 ‘태양에 손대기’를 우리는 돌려놓아야 합니다. ‘태양에서 손 떼고 하나님의 손대기’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죽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와 세상 사이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배우자, 자녀, 건강, 사업, 결혼, 승진 등 모든 문제를 붙잡았던 마음을 십자가에서 죽임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과 세상 사이에는 하나님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크게 느낄 때 문제들은 하룻강아지처럼 작아질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크게 느끼는 삶
북 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번제단을 찾지 않고 앗수르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멸망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손대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재정, 건강, 자녀, 사업, 목회 등 어떤 문제든 마음으로 손대는 것은 태양에 손대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와 앗수르 사이에는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을 크게 느끼자 앗수르는 작아졌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크게 느낄 때에 문제들은 하룻강아지처럼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일을 마음으로 접하면 정녕 죽습니다. 법정 스님이 난초에 대한 집착을 버렸듯이, 작은 일이라도 마음에 손대면 마음은 타죽습니다. 기쁨은 사라지고 염려와 근심이 생깁니다. 육체로 접하는 대상이나 사건에 절대로 마음의 손을 뻗어서는 안 됩니다. 그 결과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과 세상 사이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건재하시므로 날이 갈수록 하나님을 더 크게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설교에서 말하는 '마음으로 손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의미하나요?
- ❓'태양에 손대지 않기'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 ❓히스기야 왕의 기도가 앗수르의 멸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 ❓세상일에 마음을 대면 '죽는다'는 것이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의미인가요?
- ❓마귀의 '태양에 손대기' 프로젝트와 하나님의 '태양에서 손 떼고 하나님 손대기' 프로젝트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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