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삶과 안정감은 별개다 (이사야 25:1~12)
설교 요약
세상적 안정감의 허상
세상에서 추구하는 안정감은 창조주 하나님의 품에 안겨 누리는 진정한 평강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마귀는 인간을 속여 세상 안에서 조건을 조성하여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적 안정감 추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전적으로 거절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주된 과녁이 됩니다.
성읍의 파멸, 세상의 허무함
성경은 성읍을 돌무더기로 만들고 견고한 성읍을 황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합니다. 당시 성읍은 세상에서 삶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장치들의 상징이었습니다. 견고한 성벽, 막강한 군사력, 혹은 현대의 철밥통 같은 직장, 두둑한 은행 잔고, 연금 등은 모두 인간이 의지하는 세상적 안정감의 근원들입니다. 그러나 심판 때가 되면 이러한 것들은 지푸라기와 같은 것으로 여겨지며, 진정한 안정감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빈궁한 자의 요새, 하나님의 임재
한편,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처럼 몰아칠 때, 하나님은 빈궁한 자의 요새가 되십니다. 세상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자, 즉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폭풍 중의 피난처요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어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안정감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무언가를 안정감의 토대로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것'의 죽음, 하나님의 품
하나님께서 나의 평강의 근거가 되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것들에 대한 자기-주권의 죽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부동산 수입, 은행 잔고, 연금 등 세상적인 안정감을 주는 대상들을 믿는 마음을 십자가에서 죽여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불안한 마음도, 있는 것으로 안정되려는 마음도 모두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마음은 비로소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십자가 생활화, 평강의 지불
하나님 품에 안기면 세상의 조건들은 더 이상 안정감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재료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안정감을 얻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기쁨과 평강을 비용으로 지불하는 자들입니다. 부부생활, 자녀 양육 등 모든 삶의 과정에 앞서 하나님을 먼저 만나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기쁨과 평강을 가지고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기쁨과 평강의 부자
안정감(평강)은 기쁨과 마찬가지로 삶의 목적이나 지향점이 아니라, 삶이 시작되기 전에 갖추어야 할 밑천이자 재료입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세상에 대해 죽음으로써 하나님을 제일 먼저 만나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기쁨과 평강을 가지지 못했다면 하루를 시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평강이라는 두둑한 비용을 들이면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을 만나든 안 될 일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십자가를 생활화함으로써 기쁨 부자, 평강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세상적 안정감을 추구하는 것이 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가?
- ❓하나님께서 나의 요새가 되시는 경험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 ❓'나의 것'에 대한 죽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 ❓십자가 생활화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가?
-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강을 '비용'으로 지불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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