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대신 사냥, 기쁨 대신 중독 (이사야 53:4~9)
설교 요약
사랑의 사막과 무지
세상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넘쳐나지만, 실제로는 사랑의 사막입니다. 이는 사랑에 대한 우리의 무지함 때문입니다. 헬라어의 에로스, 필로스, 아가페를 넘어서는 성경적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생성되는 특산물이며, 이 사랑에 참여하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이웃 사랑 역시 삼위일체 안에서의 사랑이 전제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삼위일체 되심에 참여하지 못한 채 사랑의 필요성만 느끼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냥을 하게 됩니다.
메시아 수난의 의미: 허물과 죄악
이사야 53장은 메시아의 수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적 유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허물'은 하나님만으로 기뻐해야 할 창조 원리에 대한 반역, 즉 하나님 없이 세상으로 기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는 바닷물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것처럼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는 중독 현상과 같습니다. '죄악'은 가장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우회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된 마음의 비틀림입니다. 이 허물과 죄악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 마음의 허물과 죄악을 없애기 위해 붙잡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안의 사랑: 담고 담기는 관계
삼위일체 되심의 특산물인 사랑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로의 마음에 계실 때 생깁니다. 우리도 사랑을 경험할 때 상대방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고, 내 마음도 상대방에게 들어가는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는' 관계를 이룹니다. 그러나 인간 사이의 사랑은 주관적이며 실제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해 실망과 배신감을 낳습니다. 세상의 대상을 마음에 담는 것은 맹수를 우리에 가두는 것과 같아 반드시 아픔과 괴로움을 동반합니다. 오직 삼위일체 안에서만 완전한 담고 담기는 사랑이 가능합니다. 예수님 안에 아버지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성령님을 통해 계시며, 이 일체를 통해 완전한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기쁨의 근원: 하나님을 담는 것
사람의 마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담도록 지음 받았으나,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세상의 것을 담으려 합니다. 사업이나 물질 등 세상을 마음에 담으려는 시도는 성립되지 않기에 맹수를 사냥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것을 담게 된 마음에는 기쁨이 생길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기쁨은 순간적이며 더 큰 괴로움을 동반하는 마약과 같습니다. 오직 삼위일체 되심의 관계에 참여할 때, 세상에 중독된 마음의 허물과 비틀린 죄악을 죽이고 진정한 사랑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십자가 생활화: 반란과 비틀림의 억제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 동안에만 세상에서 기쁨을 원하는 반란적 기질과 비틀린 기질은 억제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놓치면 이러한 기질은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 이 기질은 억제될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붙잡고 있을 때에만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만나는 이웃에 대해 진정한 이웃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내 마음에 담겨야 하는 것은 오직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음으로써 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불평 없이 인내하라는 태도로 십자가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세상의 사랑과 어떻게 다른가요?
-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허물'과 '죄악'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의 사랑은 어떻게 경험할 수 있나요?
- ❓세상적인 기쁨이 우리에게 해로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 ❓십자가 생활화는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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