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16:1-33) 두 가지 돌 굴리기
설교 요약
부조리의 늪, 신을 모르는 인생
실존 철학자 까뮈는 인생을 '부조리'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지만,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 있다는 잠언 16장 1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계획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괴리를 경험할 때 우리는 부조리를 느낍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이 현실을 바라볼 때,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원치 않는 상황의 연속으로 느껴집니다.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묻게 됩니다. 까뮈는 이 부조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죄성을 간과한 것입니다.
'맡기라'는 역설: 돌을 굴려 내려보내라
성경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를 '내가 계획한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달라'고 잘못 이해합니다. 진정한 '맡김'은 내가 붙들고 있는 모든 것을 마치 돌을 언덕 아래로 굴려 보내듯 버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갈이'는 '굴려 보낸다'는 뜻으로, 이는 내가 해야 할 일, 내 사업, 자녀 양육 등을 더 이상 내 힘으로 끌어올리려 애쓰지 않고 하나님께 완전히 위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지프처럼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삶이 아니라, 돌을 굴려 내려보내는 것이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죄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부조리
까뮈와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은 인생의 부조리를 보았지만, 인간 내면의 죄를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신다'는 말씀처럼, 우리는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간과한 채 세상이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는지 불평합니다. 내 속의 죄를 보지 못하면, 내 마음의 소원과 외부 세계의 불일치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할 때, 인생은 설명 불가능한 부조리의 연속일 뿐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어지는 두 가지 돌 굴리기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내 사업, 자녀, 건강 등 모든 것을 마치 60미터 다리 아래로 던져버리듯 완전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는 '망하면 망하리라'는 심정으로, 내 힘으로 끌어올리려 애쓰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내 안의 생각을 주장하시고 그 생각대로 현실을 이루어 가시는 통일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어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죄의 죽음과 하나님과의 통일
굴러 떨어지는 사업, 자녀, 결혼 등 인생의 모든 과제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돌을 굴려 올리려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 모든 과제에 대한 우리의 욕망과 집착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행사를 굴려 보내고 하나님을 마음으로 붙들 때, 우리 안에 새로운 생각과 소원, 계획을 주시고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자기-주권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샬롬의 삶을 향한 초청
인생은 내 죄 때문에,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해 부조리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돌을 굴려 올리려 했던 모든 노력을 멈추며, 하나님만으로 가득 채워질 때 우리는 샬롬의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의 생각을 주장하시고 그 생각대로 현실을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통일성을 오늘 하루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두 가지 돌 굴리기'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인생이 부조리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성경은 이에 대해 어떻게 답하고 있습니까?
-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합니까?
- ❓우리가 '돌을 굴려 올리려' 애쓰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는 왜 잘못된 것입니까?
- ❓죄가 우리의 삶에 부조리를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십자가를 통해 '자기-주권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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