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는 건 괜찮다 속이지만 말자 (잠언 11:1~31)
설교 요약
속임의 세 가지 범주
속임은 크게 내가 남을 속이는 것, 남에게 속는 것, 그리고 누구도 속이지 않았는데 스스로 속는 것, 이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속임은 궁극적으로 마귀로부터 비롯됩니다. 마귀에게 속으면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게 되고, 이는 다시 타인을 속이거나 타인의 속임수에 빠지게 하는 연쇄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지혜의 열쇠, 의인과 일천 번제
솔로몬의 잠언을 해석하는 열쇠는 ‘의인’입니다. 의인은 일천 번제를 통해 하나님의 판단을 듣는 마음, 즉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의인으로 칭하신 것은 그의 지혜를 구하는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판단을 듣는 마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의인의 기준임을 보여줍니다.
의인은 속지 않고 속이지 않는다
의인은 속지 않고 속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령 속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산하신 것이기에 손해나 상실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속임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1절의 ‘속이는 저울은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기뻐하신다’는 말씀과 24절의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된다’는 말씀에서도 드러납니다.
속임의 근원, 세상에 대한 기대
재물을 의지하거나 땅, 주식 투자에 혹하는 것은 모두 마귀에게 속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안에서 얼마든지 기쁘고 만족할 수 있다는 속임수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지만, 그의 비극적인 삶은 이러한 기대가 깨어졌을 때 나타나는 슬픔과 노여움을 보여줍니다. 그는 삶 자체에 속은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아 삶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품었던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미래
마귀가 사람들을 속이는 가장 효과적인 단어는 ‘미래’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미래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진정 속이지 않는 미래는 위에 있는 하늘로부터 옵니다. 마귀가 꿈꾸게 하는 미래는 세상 안에서의 희망이지만, 이는 결코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으로 지금 기뻐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십자가에서 판단을 죽임
의인은 이 세상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죽이는 자입니다. 솔로몬처럼 십자가를 통해 이러한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은 세상의 기쁨거리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판단을 죽일 때,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들어오시고 만족과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설령 타인에게 속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한 목적을 향한 지름길이 됩니다.
속임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십자가에서 날마다 자신의 판단을 죽임으로써, 우리는 남을 속이거나 남에게 속거나 스스로를 속이는 근원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의인은 속이지도 않고 속지도 않으며, 혹 속았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속임과 속음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의인이 속는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 ❓일천 번제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와야 할까요?
- ❓푸시킨의 시와 삶이 보여주는 '스스로 속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 ❓십자가에서 '나의 판단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삶의 태도를 의미하나요?
-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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