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8:1-17) 삶의 원칙이 모호한 자리에 서라.
설교 요약
지혜와 얼굴의 광채
지혜는 하나님께 듣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과 계획이 죽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 때 얻어집니다. 이 듣는 마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답을 얻을 때, 우리의 얼굴에는 광채가 납니다. 이 지혜는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는 귀한 것입니다.
왕과 신하의 관계
죽음의 자리에 서서 세상을 거꾸로 보다가, 이제 죽음 이후의 세계를 향해 마음을 돌리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들려옵니다. 이 하나님과의 관계는 왕과 신하의 관계와 같습니다. 왕의 말은 절대적인 권능이 있기에, 왕의 뜻을 함부로 묻거나 거스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해 아래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왕 앞에서 물러나기를 급하게 하거나 악한 것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이해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분노하며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그것이 바로 악입니다.
원칙의 부재와 하나님의 섭리
세상에는 악인이 벌을 받고 의인이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받는 듯한 원칙 없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해도 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불신자들이 장수하며 번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마치 왕이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듯, 하나님의 행하심 또한 우리가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라고 물을 수 없을 만큼 절대적입니다.
웰빙을 위한 원칙 추구의 함정
우리는 삶의 원칙을 붙잡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경외조차도 웰빙을 위한 원칙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을 받는다'는 약속에 기대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현장에 깊이 들어가 본 사람은 세상의 복이나 장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자체가 가장 큰 복이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동행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잘 산다'는 원칙을 찾으려 하지만,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체하는 행위입니다. 원칙대로 살면 되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이시며, 그의 결정과 섭리는 신하에게 다 이해될 수 없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것은, 우리가 작은 왕이 되어 원칙으로 삶을 경영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죽음과 만남
우리가 삶의 원칙을 찾으려는 이유는, 원하는 목적지로 효과적으로 가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 삶으로 모셔들이는 행위를 중단하고, 하나님 대신 원칙을 붙잡게 됩니다. 원칙 대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셔드리기 위해, 오늘도 순간순간 돌아가신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죽음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과 관계하며 복된 삶을 살 때, 하나님 만남이 가장 귀한 복임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왜 세상은 원칙이 없어 보이는가?
- ❓하나님 경외가 웰빙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는가?
-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 ❓삶의 원칙 대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 ❓십자가는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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