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의 하이힐(창 5:1-32)

📖 창 5:1-32시즌I_구약창세기-1

설교 요약

정형화된 족보 속 에녹의 특별함

창세기 5장의 족보는 대부분의 인물에 대해 '몇 세에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살다가 죽었다'는 정형화된 틀로 기록됩니다. 그러나 에녹에 관한 기록은 다릅니다. 그는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고, 마침내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이들과 달리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특별한 경우입니다.

하이힐의 기원과 에녹의 하이힐

하이힐은 유럽에서 길거리에 버려지는 오물로부터 긴 치마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굽을 높여 신은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더러움을 피하려는 인간의 방식입니다. 에녹의 하이힐은 이러한 인간적인 방식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별명이 붙은 에녹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걸어 다니실 때 하나님이 마음을 두실 만한 깨끗한 존재로서, 마치 하나님의 신발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마음의 청결함과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둘 수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이 마음을 두실 만큼 더러워지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선악 판단의 기준을 스스로 세우며 마음이 더러워졌습니다. 청결함이란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인데,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만 계셔야 하지만 다른 것들이 들어와 마음이 더러워졌습니다. 에녹은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스스로 선악 판단의 기준을 두지 않음으로써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았고, 하나님이 마음을 붙이실 수 있었습니다.

마음 둘 곳을 찾는 인간과 하나님의 찾으심

사람들은 마음 둘 곳을 찾기 위해 애인을 구하고 결혼하며 자녀나 사업에 마음을 둡니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면 방황하며 유행을 쫓거나 외모를 바꾸는 등 전전긍긍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듯, 하나님도 이 땅에서 마음 붙일 곳을 찾으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세상의 것들로 더러워져 하나님이 마음을 붙이시기 어렵습니다. 에녹은 아벨의 제사처럼 자기 기준을 죽이고 선악과 따먹는 일을 중단함으로써 하나님과 동행할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과 '하나님의 납치'

히브리서 11장 5절은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증거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머무실 곳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족이나 집 등에 마음을 두지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납치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하늘로 끌고 가신 것입니다. 이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결과입니다.

선악 판단을 멈추고 하나님께 맡기라

우리가 주어진 일 앞에서 '나쁘다' 또는 '좋다'고 판단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동행은 어렵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좋다 나쁘다 하는 자신의 판단을 멈추고 그 일 앞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자신의 선악 판단 기준을 죽일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에녹처럼 하늘로 데려가 하늘을 느끼게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몸으로 들림받지 않더라도, 마음이 천국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하이힐이 되라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이 마음 붙이실 곳을 찾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만 계셔야 할 자리에 세상의 것들이 들어와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이힐이 되어 드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 앞에서 나의 선악 판단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하늘로 데려가시며, 우리는 세상에 있지 아니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에녹의 하이힐 (창 5:1-32) 오늘 아담의 족보가 나오는 창세기 5장 말씀, ‘에녹의 하이힐’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5장의 계보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의 틀이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첫 번째 아들을 몇 세에 낳았고 그리고 그 뒤로 몇 세를 살면서 자식을 낳았으며 그러다가 첫 번째 아들을 낳았던 그 나이와 그 이후로 자식을 낳으며 살았던 나이를 더해서 몇 년을 세상을 살다가 죽었다 다시 말해서 낳다가 죽었다, 낳다가 죽었다 계속해서 그렇게 한 사람에 대한 역사의 묘사 방식을 정해놓고 그리고 족보를 써내려 가는데, 유독 에녹에 관한 이야기에서만은 전혀 다른 표현을 사용하게 됩니다. 21절을 보세요. 「에녹은 육십 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여기까지는 같습니다. 22절입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지 않았나 보지요. 그렇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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