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어벙하면 만사형통(창 3:1-7)
설교 요약
원죄의 치명적 결과: 판단의 시작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은 인류에게 원죄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겪는 고난과 고통의 근원이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를 해방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원죄의 실제적인 능력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앓고 있는 병, 즉 선악 판단이라는 질병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는 가장 쉬운 길, 판단
선악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분별하는 인식 작용 전반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처럼 되는 가장 쉬운 길이며, 우리 삶에서 끊임없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내 가정사, 자녀, 남편, 아내, 심지어 대통령이나 교회 지도자까지 판단하며 우리는 쉽게 '하나님'이 됩니다. 이러한 판단은 너무나 재미있고, 마치 '씹는' 것처럼 쉽게 이루어지지만, 이는 자기-주권의 죽음을 외면하는 행위입니다.
판단의 칼날: 에덴을 잘라내는 힘
'판단(判斷)'이라는 단어의 '판(判)'은 '절반으로 자른다'는 뜻입니다. 판단은 주어진 상황을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잘라내어 에덴을 사막으로 만듭니다. 부족한 것을 찾아내고 집중하면서 낙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행복할 수 없다는 판단은 그 자체로 우리의 행복을 잘라내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단 하루도 에덴이 아닌 환경을 주신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판단을 통해 스스로 기쁨의 동산을 망가뜨립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어벙해지기
우리가 조금만 '어벙'해진다면 만사형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벙함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음을 통해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다가오는 문제보다 십자가를 먼저 생각하며, '나는 2,000년 전에 죽었다'는 고백과 함께 잠시 어벙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것을 멈추고 십자가를 붙잡고 30분만 어벙하게 있으면, 놀랍게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문제가 은혜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삶에서 몰아내지 말라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는 주어진 은혜를 자를 뿐만 아니라, 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우리 삶에서 몰아내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내가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을 쫓아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자식의 성적이 안 좋다는 판단으로 하나님을 몰아내고, 성적을 좋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원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지만, 그 결과는 가장 비참합니다.
판단 대신 십자가, 어벙함으로 만사형통
자식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 자식을 판단하기 때문에 기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남편, 아내, 혹은 정치인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들을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기쁨이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의 동산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판단하며 그것을 잘라버립니다. 이제는 판단을 멈추고,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죽었음을 고백하며 모든 문제 앞에서, 모든 사람 앞에서 조금만 어리벙벙해지십시오. 그러면 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형통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선악 판단이 왜 그렇게 치명적인가?
- ❓십자가 복음은 선악 판단의 문제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 ❓어떻게 하면 '어벙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
- ❓판단하지 않는 삶이 실제로 가능한가?
- ❓만사형통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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