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막는 불칼(창 3:22-24)

📖 창 3:22-24시즌I_구약창세기-1

설교 요약

피조물의 자리 이탈과 기쁨의 상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스스로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는 피조물로서 'I have nothing'을 고백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1'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괄호로 묶여 (0,1)의 관계를 유지해야 할 때 에덴이 지속되었지만, 인간은 스스로 분별의 기준을 갖게 되면서 피조물의 자리를 이탈했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참된 기쁨을 근본적으로 상실했습니다. 일시적인 성취나 세상적인 조건으로 얻는 기쁨은 3일을 넘기지 못하며, 진정한 기쁨은 아침마다 새롭게 솟아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에덴의 기쁨과 하나님 부재의 비극

에덴동산의 기쁨은 풍족한 자연이나 웰빙 조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오늘날 우리 삶에 기쁨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기쁨의 나라로 들어올 수 있는 길목에 불칼로 담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기쁨을 추구하지만, 기쁨이 없는 땅에서 살아가며 삶의 영토가 막혀버린 상태입니다. 이는 마치 100년 전 중국에서 밴쿠버로 이민 간 사람처럼, 기쁨이 없는 땅으로 이민 간 것과 같습니다.

천국의 도래와 불칼의 경고

기쁨이 없는 땅에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예수님과 더불어 천국을 보내십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지만, 동시에 **“나무 뿌리에 도끼가 놓였다”**고 경고했습니다.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기쁨의 동산이 우리에게 다가왔음을 의미하지만, 그 동산 주변에는 불칼로 둘러쳐 있습니다. 죄인 된 우리가 이 모습 그대로 천국에 다가갔다가는 불에 타 죽거나 도끼로 찍혀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 것에 빼앗겨 더러워졌으며,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할 존재가 정조관념 없이 타락한 상태입니다. 이는 마치 컴퓨터의 방화벽처럼,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는 불칼의 경고와 같습니다.

십자가 사건과 '영적인 맞불 지르기'

이 기쁨을 막는 불칼을 넘어서 어떻게 천국으로 들어가고, 현재의 삶 속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여기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결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불칼은 죄인을 태우기 위한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불에 타지 않지만, 죄인은 불칼에 닿기만 하면 타버립니다. 여기서 **‘영적인 맞불 지르기’**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산불이 거셀 때 맞불을 놓듯, 죄인 된 우리가 스스로를 태워 죄를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다는 것은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내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자기-주권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죄의 소멸과 참된 기쁨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방식으로 내 죄가 타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맞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죄가 타버리면 불칼이 임해도 탈 것이 없기에, 불칼로 막힌 에덴동산, 즉 기쁨의 동산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자녀 공부, 돈, 직장 등 기쁨을 얻기 위해 애쓰는 모든 노력은 오히려 속을 태울 뿐입니다. 죄인 됨을 먼저 인식하지 못하고 기쁨의 동산으로 들어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죄를 고백하며 맞불을 지를 때, 우리는 비로소 불칼의 담을 넘어 진정한 기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쁨의 동산으로 들어가는 기도

어떤 문제 앞에서도 기쁨의 동산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돈 문제, 자식 문제 등 모든 문제 앞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내 속에 있는 죄를 그대로 고백하며, 내가 죽어서 'zero'가 되었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머리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앞에서 **“주님, 2,000년 전에 주님이 죽으실 때 나도 함께 죽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뭘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어느덧 불칼의 담을 넘어 기쁨의 동산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십자가를 붙잡고 맞불을 지르며 기쁨의 동산으로 들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도입부

기쁨을 막는 불칼 (창 3:22-24) 오늘 읽은 이 말씀 중심으로 해서 ‘기쁨을 막는 불칼’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나누며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기쁨을 막는 불칼! 드디어 하나님께서 용단을 내리십니다. 선악과를 따먹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성품 중에 전지하시다, 전능하시다, 무소부재하시다 이러한 성품이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고 하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게 좋고 나쁨을 내 스스로 결정하고 분별하는 그러한 사람이 된 것을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진법 복음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자면, 인간이 피조물로서 I have nothing을 고백해야 될 사람들이 다시 말해서 내 속에는 無 아무 것도 없음을 내가 갖고 있다 라고 고백해야 될 그런 피조물들이 스스로 분별의 가치 기준을 안에 갖게 되면서 0(zero)의 자리를 떠나고 1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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