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의 승천은 영전인가 유배인가? (창5:1~32)
설교 요약
승천, 부러움인가 두려움인가?
에녹의 승천은 흔히 좋은 일, 즉 '영전'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에녹의 승천이 부럽습니까, 아니면 두렵습니까?'로 바꾸면 우리의 실제 마음 상태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승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기꺼이 '예!'라고 답하기보다 아쉬움과 복잡한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아직 온전히 신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0억 로또 당첨과 에녹의 승천 중 무엇이 더 부러운지를 생각해보면, 승천이 왜 우리에게 부럽게 느껴지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김 과장이 20억에 당첨되면 위장병이 생길 정도로 부러움과 원망이 일어나지만, 에녹의 승천은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는 우리가 승천을 진정으로 부러워할 수 있는 상태, 즉 승천을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고로 좋은 일로 여기는 상태가 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에녹 이야기의 중요성: 구약의 색깔을 바꾸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다 승천했다는 짧은 이야기는 구약성경 전체의 색깔을 바꾸는 엄청난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마치 역사 기록의 한 줄에서 '대장금'이라는 거대한 드라마가 탄생한 것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벨과 함께 첫 번째 믿음의 선배로 언급되는 에녹의 이야기는, 구약의 선민들이 하나님과 어떠한 자세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결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에서 깊이 생각하고 얻는 바가 없다면, 우리는 구약성경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에녹의 승천 이야기는 단순히 한 인물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승천이 부럽지 않은 이유: 마음이 천국에 가 있지 않기 때문
에녹이 승천할 당시의 나이 365세는 오늘날의 나이로 환산하면 30세 초반 정도 됩니다. 세상적인 삶만 본다면 요절한 것이기에, 우리는 에녹의 승천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자녀가 30대에 승천한다고 하면 감사하기보다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이 땅에서의 축복과 안정 대신, 30대 초반에 이 땅을 떠나야 했다는 점은 에녹이 '괜한 짓'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승천이 은총이 아니라 하늘로의 '유배'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천국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지금 당장 승천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아멘' 할 사람이 적은 것은 우리 신앙의 답답한 현실입니다. 이는 천국이 있음을 아는 것과 천국이 있음을 믿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천국에 마음이 가 닿아 있고, 천국을 실제로 가장 먼저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승천을 부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천국에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이며, 천국에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는 천국에 계신 분들 중에 우리가 마음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마음이 하늘에 있을 때 가능
승천이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최고라는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결코 살 수 없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늘에 가 머물러 있지 않으면 동행은 불가능합니다. 동행함으로써 승천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에녹의 마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제일 좋아했기에 동행이 가능했고,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더 두시기 아까워 데려가셨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세월호 참사 피해자 중 하나님께 마음을 둔 이들이 하나님께서 아까우셔서 데려가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과 일찍 승천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것을 바라야 할지 모르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입니다. 자녀가 일찍 죽으면 최연소 천국 합격이라 기뻐해야 하지만,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러지 못합니다.
아벨의 제사와 에노스의 자아의식: 동행의 전제 조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마음을 하늘나라에 계신 하나님께 둠으로써, 그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고 흐르는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전철이 레일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힘으로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디젤기관차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뽑아내려 하거나 맨땅을 달리려는 삶은 고갈, 탈진, 수고로움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삶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 있는 것을 가지면 좋을 것 같고 행복할 것 같기에 마음을 하늘로 올리지 못합니다. 에노스라는 이름이 말하듯, 이 땅을 향한 소원 자체가 과녁이 빗나간 것이며, 유전 죄로 인한 죽음, 부패, 병든 상태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벨의 제사와 같은 십자가의 제사를 통해 이 땅에 대한 마음의 끌림이 죽어야 하늘이 현실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십자가의 제사를 생활화하지 않기에 하늘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고, 승천이 유배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에녹의 승천: 구약성경을 보는 현미경
구약성경은 천국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지만, 에녹의 승천을 통해 우리는 구약성경 전체를 볼 수 있는 현미경을 얻게 됩니다. 승천을 부러워하기 위해서는 에노스와 같은 자아의식, 즉 내 속에 죽음과 부패, 원죄적 성향으로 인한 병듦이 있음을 아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또한, 아벨과 같은 제사가 날마다 드려져야 합니다. 이 구조 속에서 구약성경의 의미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에녹의 이야기는 중종 때 한 의녀가 임금의 건강을 담당했다는 한 줄의 이야기에서 '대장금'이라는 거대한 드라마가 탄생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에녹의 승천이 우리에게 영전으로 느껴지는가, 아니면 유배로 느껴지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입으로 시인까지 할 수 있어도, 지금 당장 천국으로 오라 하면 꺼려지는 마음은 아직 유전 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아벨의 제사인 십자가의 제사를 생활화함으로써 에노스의 자아의식이 날마다 작용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에녹처럼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 하루하루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에녹의 승천이 정말로 '영전'인지, 아니면 '유배'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 ❓승천을 부러워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 상태는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 ❓아벨의 제사와 에노스의 자아의식이 하나님과의 동행에 왜 필수적인가?
- ❓이 땅에서의 삶과 천국에서의 삶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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