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심과 지켜내심 (창20:1~18)

📖 창20:1~18시즌II_구약창세기-2

설교 요약

신앙의 불행: 불신앙의 착각

신앙인의 불행은 자신이 불신앙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지켜내심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내어준 사건은 이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주석가들은 아브라함의 행동을 비겁하고 이기적인 인격적 결함으로 해석하지만, 이는 경륜적 차원에서 볼 때 의문점을 남깁니다. 소돔과 고모라 멸망 직전,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이삭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90세의 사라를 왕이 굳이 데려갈 이유가 무엇인지도 의문입니다.

'지켜주세요' 기도의 본질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하나님께 '이것 좀 지켜달라'는 간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켜달라'는 기도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마음에 담아두었을 때 가능합니다. 사업, 자녀, 가정, 나라 등 이 땅의 것들을 지켜달라는 기도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만이 마음 안에 계시는 상태입니다. 돈이나 세상의 욕망이 마음에 들어오면 하나님을 몰아내고 '지켜달라'는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이는 신앙의 끝을 의미합니다.

유일한 '지켜주세요' 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지켜주세요' 기도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만을 향하도록 지켜주세요'**라는 기도뿐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마음에 들어와 하나님을 밀어내지 못하도록, 마음을 십자가에 매달아 하나님께 고정되도록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외의 모든 '지켜주세요' 기도는 불신앙의 기도이며, 이러한 기도를 할 때 신앙의 불행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지만, 이는 선택의 차원에서이며 인격적인 관계에서는 잘못과 불신앙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십니다.

아브라함의 '지켜내심' 이해

아브라함은 24년 전 애굽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실 때부터 사라를 마음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는 사라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했고, 끊임없이 제단을 쌓으며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자신을 죽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맨몸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유지했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바라지도 않은 것들을 '지켜내셨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 후손에게 땅을 주며,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게 하신 것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약속이었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만 붙들어 두었습니다.

냄비와 같은 하나님, '지켜내심'의 원리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는 이면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직접적인 접촉은 공멸을 초래함을 알았습니다. 물과 불이 직접 닿으면 상극이 되지만, 냄비라는 매개체를 통해 물이 끓는 것처럼, 하나님이 냄비 역할을 하십니다. 즉, 나와 세상의 모든 것들(아내, 자녀, 사업 등)과의 관계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림으로써 가능하며, 이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지켜내십니다'. 아브라함의 사라에 대한 마음은 하나님께만 집중되었기에,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시는' 원리입니다.

'지켜내심'의 삶

하나님은 땅의 삶에 대해 '지켜내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지켜내시지 않는 것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지켜내시도록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내가 지키겠다고 하나님까지 동원하는 것은 뒤집어진 것이며,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에 관해서는 지켜내시는 분이시지, 지켜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도입부

신앙인의 불행은 불신앙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행한 착각은 바로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하나님의 지켜내심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음에서 비롯 되고 있지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아내 사라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켜 내셔야 할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이점을 모르고 아브라함을 비난하면 할 수록 비난하는 당사자의 영적 무지와 불신앙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지켜주심과 지켜내심(창20:1~18)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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