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카의 역방향 사랑 (창22:1~15)

📖 창22:1~15시즌II_구약창세기-2

설교 요약

'이제야'라는 말의 역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미 수많은 믿음의 증거를 보여준 아브라함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단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시고 친밀하게 소통하시던 아브라함과의 관계에서 갑자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고, 하나님께서 거리를 두신 듯한 모습은 이 '이제야'라는 말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퀸카의 역방향 사랑: 하나님과의 거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찾아오시던 이전과 달리,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상황에서 거리를 두신 것은 마치 퀸카 여학생이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다가오는 남학생에게 잠시 다른 남자를 만나도록 틈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삭이라는 '좋은 대상'이 끼어들 틈을 주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보다 자신을 더 우선시하는지 시험하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셨습니다.

이삭을 제쳐두는 결단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사이에 이삭을 끼워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 전부와도 같은 아들 이삭을 제쳐두고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이는 "하나님! 하나님과 나 사이에 누가 끼어있으면 저는 못 삽니다. 그것이 이삭이라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라고 부르는 이삭이라도, 그 이삭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끼어들면 저는 못사는 사람입니다."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이러한 자기-주권의 죽음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밀착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역방향 사랑의 실천

성탄절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사건이듯, 우리도 역방향으로 하나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어떤 좋은 대상, 심지어 목숨까지도 제거해야 합니다. 불평 없이 인내하라는 말씀처럼, 십자가를 쥐고 매일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하나님보다 가까운 존재가 있을 때 앞이 깜깜해지는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삶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쳐두고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결연한 단언에 감동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퀸카의 역방향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 다가가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할 때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퀸카의 역방향 사랑, 그 의미

퀸카의 역방향 사랑은 단순히 외모나 조건이 뛰어난 상대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상대와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한 것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앞설 수 없다는 진리 우선의 신앙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쥐고 하나님을 향해 불같이 일어나는 역방향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약속 후 25년이 지나서야 이삭을 주시더니 이번에는 그 아들을 아브라함이 직접 번제로 드리라고 하나님이 명하십니다. 이건 정말 상식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이해가 안 될 뿐 아니라 은근히 화까지 날 일입니다. 그리고 정말 납득이 힘든 것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라는 말씁입니다. 이 "이제야 "가 대체 왜 이제야 나옵니까? 그 동안은 뭐였다는 거지요? 이 모든 물음에 퀸카의 역방향 사랑만이 그 답을 줄 수 있습니다. 퀸카의 역방향 사랑(창22:1~15)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8. …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