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말의 변신도 역시 무죄인가? (창38:12~19)
설교 요약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세속적 격언과 달리, 다말이 창녀로 위장하여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해 임신한 행위는 명백히 패륜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추악한 행위로 태어난 베레스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것은 큰 의문을 남깁니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판단을 넘어선, 다말의 목숨을 건 사투였음을 시사합니다.
다말의 의중: 잃을 것 많은 무리수
다말의 변신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시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형에 처해질 위험까지 감수하면서도, 다말은 이 무리수를 감행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단순히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 집안에 머물기 위한 사투
다말이 이토록 위험한 선택을 한 근본적인 이유는 아브라함 선민의 집안에 머물러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아브라함의 씨를 잇는 것만이 그 집안의 울타리 안에 남아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유다가 셋째 아들 셀라를 줄 생각이 없음을 알았기에, 다말은 죽음을 각오하고 시아버지의 씨를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여호와의 목전: 가장 편안한 자리
다말이 그토록 여호와의 목전에 있기를 갈망한 이유는, 그곳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시고 관계하시는 유일한 집안이 아브라함의 집안이었기에, 이방 여인 다말은 그 집안의 씨를 잉태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자기-주권의 죽음을 통해 가능한 일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여호와의 목전
우리가 여호와의 목전에 거하는 것은 다말처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마음에 잉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상에서 소중했던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며, 하나님의 씨인 예수님을 잉태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여호와로 부유하고 편안하며 행복한 상태, 즉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선민의 책임과 다말의 투쟁
선민으로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것은 자기 주도적 삶을 사는 것이며, 이는 결국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다말처럼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십자가를 붙잡는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나의 죽음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여호와의 목전에 거하는 복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불평 없이 인내하라는 말씀처럼, 이 사투는 우리에게 가장 복된 길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다말의 행위가 왜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될 수 있었나요?
-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여호와의 목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십자가를 통해 ‘여호와의 목전’에 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다말의 사투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신앙적 어려움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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