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 대신 소통의 현재진행형 (창39:1~23)

📖 창39:1~23시즌II_구약창세기-2

설교 요약

형통을 바라는 마음이 형통을 막는다

우리는 흔히 형통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지만, 본문은 함께하심과 형통이 별개의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형통을 바라는 마음 자체가 하나님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따라서 형통을 구하기보다 하나님과의 소통을 현재 진행형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소통: 현재 진행형의 '함께하심'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곧 소통이 현재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임마누엘'의 약속처럼, 단순히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넘어선 실제적인 관계입니다. 몸은 함께 있어도 스마트폰에 몰두하면 소통이 없듯, 하나님과의 동행은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삶: 소통의 현재진행형을 유지하다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등 요셉의 삶에는 두 번의 '불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꿈을 꾸었던 것처럼,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님과의 소통을 현재 진행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눈 맞춤: 하나님과의 소통의 시작

보디발의 아내 유혹을 거절한 것은 윤리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은 눈을 맞추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의 시선을 빼앗는 것들에 눈을 감고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이 일치하며 소통의 길이 열립니다.

십자가 바라보기: 세상 시선의 죽음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 명품, 자녀 등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것들에 눈을 감고 오직 십자가에 마음을 둘 때, 하나님과의 시선이 일치합니다. 이 시선의 일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마음에 복사되고, 삶의 영역에서 형통이 나타납니다.

불통 속의 지름길 형통

요셉의 두 번의 불통은 사실상 형통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총리가 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생각과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할 때, 불통조차도 형통의 지름길로 드러나는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형통을 바라는 대신, 소통의 현재진행형을 유지하십시오.

본문 도입부

본문에서 소개 되는 대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삶의 성격을 간단히 묘사한다면 여호와께서 함께하심과 여호와께서 형통케하심 입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함께하심과 형통케하심의 두 과정이 구분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하심이 먼저 있고 그리고 형통케하심이 뒤 따릅니다. 이 두 과정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삶의 형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함께하심은 소통의 현재 진행형이고 이렇게 현재 진행중인 소통 위에서만 형통은 현실이 됩니다. 형통 대신 소통의 현재진행형(창39:1~23)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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