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선교하자! (창46:1~34)
설교 요약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교회 안에서 시작하라
우리는 흔히 선교사를 교회 밖으로 파송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안 다니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볼 때, 밖으로의 선교와 전도가 무의미하거나 위험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선은 교회 안에서 선교해야 합니다. 특별히 구약 교회의 태동을 보여주는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 안 선교의 시급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기독교 정체성의 위기: 유럽의 이슬람화 현상
영국의 사례처럼, 기독교의 본질적인 내용을 상실한 유럽이 이슬람화되는 현상은 심각합니다. 과거 수많은 교회가 모스크로 바뀌고, 기독교인 수는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도 개신교가 줄어드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계 지도자들조차 기독교다움을 유지하는 핵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애굽행의 역설: 430년 노예생활의 하나님의 의도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단순히 기근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400년의 고난을 위한 미끼였습니다. 하나님은 선민을 430년 동안 노예로 살게 하심으로써 죄악 된 인간의 타락 증후군, 즉 자기 주체성을 세상의 삶을 위해 사용하려는 본성을 억제하셨습니다. 노예 생활을 통해 자신의 주체성이 발휘될 수 없음을 배우고, 결국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 주체성의 죽음과 노예로의 귀환
교회는 세상의 소원을 이루어주거나 형통, 번영을 약속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타락 증후군인 세상 삶에 대한 우리 모두의 주체성을 죽이는 곳이며, 노예 상태의 억압을 가하는 자리입니다. 사업 번창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원을 하는 자신의 주체성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참된 교인의 모습입니다. 지역 교회 현실에서 이러한 가르침이 사라졌기에, 교회 안에서의 선교가 시급합니다.
십자가의 생활화: 마음이 십자가 너머에 모이는 것
십자가 사건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과 광야 생활의 의미를 동시에 충족시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 죽고, 마음이 하늘로 들어가며, 이 몸은 하나님의 노예로서의 삶을 이 땅에서 사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몸이 모인 건물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세상에 대해 죽고 마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기 위해 모인 자들입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노예로 살며, 주체성을 죽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교회 안 선교의 필요성: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라
현재 지역 교회의 타락 증후군을 북돋아 주는 현실 속에서는 밖으로의 선교나 전도가 오히려 사람들을 구원의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선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인이라면 내 주체성이 죽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24시간을 지배해야 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없는 교회가 많기에, 우리는 떠나기보다 그곳을 선교지로 여기고 기도하며 교회 안에서 선교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생활화를 통해 잃어버린 기독교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교회 안에서 선교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기독교 정체성 상실이 한국 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 ❓430년 동안의 노예 생활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나요?
- ❓교회에서 '주체성'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십자가의 생활화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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