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와 예수님의 수치만 내 몫이다 (창 9:18~29)

📖 창 9:18~29시즌III_구약창세기-3

설교 요약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벗었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알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좋다고 여기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직시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죄에 빠진 인간은 좋다고 여기는 것이 없는 상태, 즉 '벌거벗음'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진정한 좋음으로 삼으려면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데, 아담은 이것을 알기에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이 세상의 자랑거리, 즉 건강, 돈, 성공 등을 소원하는 것은 금지된 품목과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없는 상태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노아의 실수와 하나님의 의도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하체를 드러낸 사건은 얼핏 의롭고 완전한 자의 실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해석할 때는 문자적 내용 너머의 말씀의 취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설교하고 계십니다. 노아가 취하여 하체를 드러낸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체를 드러내실 사건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자 하는 내용을 위해 상황을 만드시고, 그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노아의 실수는 그의 잘못이지만, 하나님은 이를 통해 더 큰 진리를 계시하고 계십니다.

함과 셈·야벳의 대조: 수치를 대하는 태도

노아의 하체를 본 함은 수치스러움을 피해 멀리 도망쳤습니다. 이는 부끄러운 아버지와 자신을 분리하려는 태도입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겉옷을 가져와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주었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수치를 곧 자신의 수치로 여기며,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고 뒷걸음으로 다가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덮어주었습니다. 이들의 태도는 무지개이신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무지개이신 예수님과 십자가의 부끄러움

하나님은 무지개만을 보시기로 언약하셨습니다. 무지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게 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면 무지개이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의로움과 완전함의 원형이시며, 십자가에서 하체를 드러내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무지개는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님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벌거벗겨진 예수님입니다. 십자가의 부끄러움은 세상의 자랑거리가 하나도 없는 상태이며, 타락한 아담이 두려워했던 '벌거벗음'과 같습니다.

십자가 생활화: 최고의 좋음으로 받아들임

십자가를 생활화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치스러움을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좋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자랑거리나 가치들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벌거벗겨진 상태와 같을지라도, 주어진 환경과 조건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재료일 뿐 자신의 몫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수치스러움만이 나의 몫이자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자랑의 허망함과 예수님의 수치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건강, 성공, 가족의 형통 등을 바라는 마음은 함처럼 부끄러움을 드러내신 십자가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세상 것을 바라는 나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여겨야 합니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내 마음이 이 세상의 것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수치스러움이 세상을 향한 나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내 몫은 오직 예수님의 수치

예수님의 수치는 은혜이자 생명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좋다고 하는 가치들이 있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예수님의 수치스러움만이 나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를 아무것도 마음에 갖지 않고 예수님의 수치만을 나의 몫으로 얻고 자랑할 수 없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나의 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수치를 내 몫으로 자랑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독생자와 똑같이 여기실 것입니다. 노아와 예수님의 수치만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선민의 모습입니다.

본문 도입부

<노아와 예수님의 수치만 내 몫이다>의 줄거리 : 포도주에 취한 노아가 하체를 드러내고 잠든 모습에 대해 세 아들이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이 단 한 번의 태도로 인해 이들의 자손 대대로 받게 될 복과 저주가 결정 되고 맙니다. 정작 술에 취해 수치스러움을 드러낸 당사자는 노아인데 노아 자신에 대한 자신의 자책과 하나님의 질책과 나무람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이 노아의 부끄러움에 대한 아들들의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창세기 9장 18절부터 29절까지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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