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셈, 함, 야벳 중 어느 족속인가? (창 10:1~32)

📖 창 10:1~32시즌III_구약창세기-3

설교 요약

인류의 영적 분류 기준

성경은 인종학적 관점이 아닌, 하나님께서 보시는 인류의 영적 분류 방식을 제시합니다. 이는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의 족보를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가 흔히 배우는 외모나 피부색에 따른 인종 구분이 아니라, 아버지 노아의 부끄러움에 대한 세 아들의 태도에 따라 인류가 나뉩니다.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멀리 떠난 자를,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에 가까이 다가가 자기와 아버지를 불가분리의 관계로 이해한 자들을 상징합니다. 이 본문은 이러한 영적인 인종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 족속: 세상 좋음을 사냥하는 자

함 족속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에서 떠나 세상 좋음을 추구하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소원, 꿈, 비전, 희망을 좇는 '사냥꾼'과 같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인 니므롯은 '여호와 앞에 용감한 사냥꾼'으로 불리며, 이는 스스로 삶을 결정하며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냥하는 대적자임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십자가에서 벌거벗겨진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하며, '나는 이 세상 좋음이 하나도 없는 마음의 벌거숭이로는 살고 싶지 않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흑인이 함 족속이 아니라, 세상을 소원하는 자들이 함 족속입니다.

야벳 족속: 부끄러움을 받아들이는 자

야벳 족속은 셈 족속이 전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끄러움의 사건을 자신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 좋음을 싹 벗어버린 상태, 즉 세상 좋음을 아무것도 갖지 않아도 되는 벌거숭이가 되기로 결정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비중 있게 생각하시는 족속이며, 십자가 부끄러움의 사건을 전달받을 자들이 월등히 많기 때문입니다. 야벳 족속은 이 세상 좋음이 아니라 하늘 좋음을 유일한 좋음으로 생각하며, 그들의 노력이나 수고로 남길 업적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부 하나님 아버지가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셈 족속: 부끄러움을 전하는 자

셈 족속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끄러움의 수치를 자신의 수치로 삼아 마음속에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부끄러움의 사건을 전달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며, 완전함에 이르러 하나님만을 좋아함이 자리를 잡으면 셈 족속이 됩니다. 셈 족속은 십자가 복음 사건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삼아, 다른 야벳 족속에게 부끄러움의 사건을 전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함 족속이었다가 야벳 족속이 되고, 셈 족속이 된 것처럼, 모든 인류는 함 족속에서 출발하여 야벳 족속이 되었다가 셈 족속이 되어 전달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변화되는 삶

우리는 모두 죄악으로부터 시작한 까마귀파이며, 사탄의 언어 체계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여 함 족속에서 야벳 족속으로, 그리고 셈 족속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는 함 족속으로 살았지만,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여 야벳 족속이 되고,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 셈 족속이 되어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좋음을 추구하는 함 족속의 때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야벳 족속이 되고 다시 셈 족속이 되는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복음의 핵심 진리입니다.

본문 도입부

<나는 셈, 함, 야벳 중 어느 족속인가?>의 줄거리 : 나는 셈족인가요? 아니면 야벳족인가요? 그도 아니면 함족인가요? 사실 인종학적으로 보자면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셋 중 어느 하나에 속한다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세 아들의 족보가 나오는 본문은 인종학적인 관점과는 무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보시는 인류의 분류 방식을 소개하는 본문입니다. 그 분류 방식을 따르자면 나는 이제까지는 생애 거의 모든 시간을 함의 자손으로 살아온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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