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도 죄인 복 주시기가 버겁다 (창 15:7~21)

📖 창 15:7~21시즌III_구약창세기-3

설교 요약

죄와 복은 본질적으로 상극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에, 복에 대한 생각과 느낌조차 죄에 찌들어 있습니다. 좋음과 나쁨에 대한 판단이 죄로 깊숙이 물들어 있어, 죄인이 간절히 바라는 복이 참된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에게 참된 복을 누리게 하시는 일이 매우 버겁게 느껴지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체이시기에, 죄인에게 복을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과정은 힘든 수고를 동반합니다.

계약의 증표, 쪼개진 짐승과 아브라함의 질문

아브라함은 땅 소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증거를 요구하는 듯한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증거 요구가 아니라, 당시 계약법에 따른 진실한 계약 체결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계약 당사자는 짐승을 쪼개 그 사이를 지나며 계약 불이행 시 짐승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을 맹세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어떤 계약을 통해 이 땅을 소유하게 되는가'를 물었고, 하나님은 삼 년 된 암소, 암염소, 숫양과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를 통해 이 계약을 상징적으로 체결하셨습니다.

430년 노예 생활, 죄악의 심판과 흑암의 준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400년 동안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이는 가나안 땅 거주민들의 죄악이 가득 차기까지 기다리셨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그 죄악에 대한 심판을 수행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430년이라는 긴 노예 생활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좋음을 마음에 담고 그것을 이루려는 희망조차 사치임을 깨닫게 하여, 세상에 대한 흑암을 경험하게 하는 준비 과정입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죄악을 저지를 수 없었고, 좋음을 추구하는 마음조차 포기하게 됩니다.

흑암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

430년의 노예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상이 흑암임을 알게 합니다. 그 어둠 속에서 하나님은 초강대국 애굽을 심판하심으로써 자신을 영광의 하나님으로 드러내십니다. 세상에서 좋음을 찾을 수 없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백성에게, 하나님은 자신이 유일한 참 복임을 제시하십니다. 이처럼 흑암을 배경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참된 복을 누리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십자가, 430년 흑암의 압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430년 노예 생활이라는 흑암을 일상적으로 생활화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에 대해 눈이 멀어 좋음을 찾을 수 없는 상태, 즉 흑암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며, 세상과 자신을 향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일방적 계약, 하나님만이 이루시는 약속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준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시는 일방적인 계약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었기에, 자신의 생애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후손이 430년 동안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하나님께도 버거운 일이었지만, 죄인에게 참된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고군분투였습니다.

선민의 존재 이유, 참 복을 누리는 삶

선민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참 복으로 삼고 마음속에서 유지해 나가기 위해 생을 거는 자들입니다. 참 복을 누리지 못하면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세상에 대한 흑암을 만들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참된 복인 영광의 하나님을 마음으로 환하게 보는 것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 버겁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430년 흑암의 압력밥솥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세상에 대한 흑암을 만들고, 그 배경으로 영광된 하나님을 찬란하게 보는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하나님도 죄인 복 주시기가 버겁다>의 줄거리 : 죄와 복은 상극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모조리 다 죄인입니다. 죄인은 복에 관해서 보이는 생각과 느낌조차도 죄에 찌들어 있습니다. 좋음과 나쁨에 관한 판단과 생각에도 이미 너무 깊숙이 죄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이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복이 모조리 다 참 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죄인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참된 복을 누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죄인에게 복 주시기, 하나님도 버거워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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