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안식에서부터 스텝 바이 스텝 (창 2:1~9)

📖 창 2:1~9시즌III_구약창세기-3

설교 요약

태초의 안식: 창조의 목적

엿새 동안의 창조가 끝나고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일곱째 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이 처음으로 만납니다. 하나님은 이 만남을 위해 창조하셨으며, 이는 삼위 하나님 외에 인격적으로 관계할 존재를 만드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도 기대가 큰 날이었기에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태초의 안식을 회복하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에덴으로 허락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삶은 반드시 에덴이 됩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의미

창세기 1장은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창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 창세기 2장은 그 하나님을 ‘여호와’, 즉 ‘스스로 있는 자’로 부르며, 인격적으로 관계해야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장의 반복되는 창조 이야기는 안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만남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단순히 창조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상대하실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스스로 있는 자와의 만남

태초의 안식은 사람이 스스로 있는 자이신 여호와를 상대하며, 있게 된 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르는 것은 ‘스스로 있는 자이신 당신에 의해서 있게 된 자’라는 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신약에서는 여호와 대신 예수님에 의해 ‘아버지’로 대체되지만, 그 의미는 같습니다.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르며 만나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삶의 터전을 에덴으로 만들어 주심을 의미합니다.

에덴동산: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터전

사람이 살기 위해 땅을 개척하고 개간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7절에서 사람을 만드신 후 곧바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가득한 환경을 삶의 터전으로 제공하십니다. 이는 사람이 개척하고 개간해야 하는 과제를 하나님이 넘기시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주시는 곳이며, 태초의 안식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최고의 좋음: 기쁨의 에너지

본래 좋음이란 인생의 시작에서, 하루의 시작에 가질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좋음은 추구해서 가질 수 없습니다. 사탄은 ‘좋음을 추구해서 가져라!’라고 거짓말했지만, 삶은 최고의 좋음을 가진 시작점에서부터 생긴 기쁨의 에너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내 생애의 연료이자 에너지의 원천이며, 삶은 기쁨을 풀어내는 과정이지 기쁨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생활화: 하나님을 첫 번째 대상으로

우리는 세상의 문제를 마음에 담은 나 자신을 문제 삼아야 합니다. 그 문제를 안고 있는 나는 십자가에서 통째로 죽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태초에 아담이 하나님을 만날 때처럼, 하나님을 최초이자 유일한 전부의 대상으로 만나기 위해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마음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비로소 하나님을 첫 번째 유일한 전부의 대상으로 만나게 됩니다.

스텝 바이 스텝: 아버지의 생각대로

하나님께서는 태초의 안식에서처럼 당신을 만나는 사람에게 개척하고 개간해야 할 삶의 과제를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이제부터 나를 만나서 생긴 기쁨을 사방에 풀어내고 뿜어내라. 내가 너에게 허락하는 일들을 기쁨의 에너지로 한 걸음씩 따라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 앞에 놓아주시는 대로 받으며 살아가는 본래의 모습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과 만나는 태초의 안식 상태가 유지된다면, 생각나는 대로 하는 모든 일이 아버지의 생각이 됩니다.

본문 도입부

<태초의 안식에서부터 스텝 바이 스텝>의 줄거리 : 엿새 동안의 창조가 끝나고 안식하시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태초의 안식 때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이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 만남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 즉 '스스로 있는 자'로서 불리기를 원하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여호와로 부르면서 만남을 가진 인간에게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인간의 삶은 어떤 삶이 될까요? 이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도 매일의 삶을 태초의 안식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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