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속이지 않으면 평생 속아 산다 (창 29:1~35)

📖 창 29:1~35시즌III_구약창세기-3

설교 요약

우리의 본질은 육체를 입은 존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이 죄악의 체질은 너무나 당연하게 '나'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체질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속여야 합니다. 염소 새끼 가죽을 입은 예수님의 몸을 입고 있는 나라고, 죄와 저주받음에 맞서 계속해서 우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죄와 저주가 우리를 속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였던 것처럼, 우리도 뻔뻔하게 예수님의 몸을 입은 자임을 우기고 속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이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입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이 주장이 없다면 우리의 마음은 결코 하늘로 올라갈 수 없고 하나님을 지켜낼 수도 없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마음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몸을 입은 상태가 되면 하나님을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최종 목적입니다. 야곱은 영광의 하나님을 보는 경험 대신, 자신의 미래를 붙잡고 인생길을 걸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연쇄 과정의 사닥다리를 제쳐놓고 자기 인생길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선택은 죄와 저주가 작동하는 상태에서 하나님 직면하기를 버리고 세상에 대한 자기 생각을 따르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줍니다. 야곱은 하늘길 대신 인생길을 택했고, 이는 결국 네 가지 형태로 속아 넘어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눈에 속은 야곱

야곱에게 나타난 첫 번째 속임수는 자기 눈에 속은 것입니다. 그는 라헬의 매력에 빠져 땅에 있는 영광을 좇았습니다. 라헬을 얻으면 행복하고, 얻지 못하면 불행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죽기 전 야곱은 자신은 라헬이 아닌 레아와 함께 묻힐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는 영광의 하나님을 보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자기 미래를 향해 걸어간 인생의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직면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눈으로 보는 것을 따라 계속해서 속아 넘어갑니다. 좋고 나쁨, 기쁨과 슬픔 모두 마음이 속아 넘어가는 과정이며, 마음은 육체와 묶여 계속해서 속게 됩니다.

자기 뜻에 속은 야곱

두 번째 속임수는 자기 뜻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직면하지 못하면 자기 뜻대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를 통해 유다를 낳게 하실 계획이 있었지만, 야곱은 자신의 뜻대로 레아를 배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대한 주권적인 뜻을 가지고 계시며, 마음이 하나님을 직면하는 자는 그 뜻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이나 건강을 직면하며 기도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직면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길을 가면서도 자신의 뜻이 맞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이 세운 모든 뜻은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며,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기대와 예상에 속은 야곱

세 번째 속임수는 기대와 예상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과 결혼했다고 확신했지만, 현실은 레아였습니다. 세상에 대해 뜻을 가지면 기대하고 예상하게 되는데, 이는 항상 좋은 쪽을 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뜻대로 인생을 사는 자의 기대와 예상을 반드시 끊어버리십니다.

인생을 향한 우리의 기대나 예상은 적중할 수 없습니다. 선민이 세상에 대해 기대하고 예상한다면 반드시 그 기대와 예상에 속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좌절과 낙담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기대하고 예상했지만 레아를 얻게 된 것처럼, 우리의 모든 성공에 대한 기대와 예상은 십자가 앞에 서게 함으로써 벗어나게 하십니다.

은혜를 대가로 여김

네 번째 속임수는 은혜를 대가로 여김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직면하지 않고 육체를 입은 상태를 유지하면, 은혜를 당연한 대가로 여기게 됩니다. 월급을 노동의 대가로 여기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면한 자에게 월급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면 감사가 사라지고, 주어진 모든 것에서 부족함을 느끼며 지옥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직면하는 삶은 은혜로만 채워집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은혜이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칠 년 노동의 대가로 라헬을 요구하며 은혜를 대가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는 감사함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노력의 대가로 주어진다고 속았던 것입니다.

먼저 속이는 삶

우리가 야곱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삶의 현장에서 내가 예수님의 몸을 입은 자임을 우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우자 앞에서, 자녀 앞에서, 직장에서 **'나는 당신들이 보는 내가 아니다. 나는 예수님의 몸을 입고 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우김을 받아들이고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의 몸을 입은 자임을 기억하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삶이 진행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로만 채워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먼저 속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속아 살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먼저 속이지 않으면 평생 속아 산다>의 줄거리 : 사실은 육체를 입고 있는 존재가 나라는 생각이 사탄에게 속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죄의 상태가 체질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너무나 지독할 정도로 당연하게 그것이 나다. 그러므로 이 죄악의 체질에 맞서 싸우려면 속여야 한다. 염소 새끼의 가죽인 예수님의 몸을 입고 있는 것이 나라고 내 죄와 저주받음에 맞서서 계속 속이고 우겨야 한다. 이렇게 먼저 속이지 않으면 죄와 저주가 나를 속이는 상태로 삶을 살게 된다. 그 상황이 어떤지를 본문이 여실히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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