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려면 속여야 하고 속아야 한다 (창 37:29~36)
설교 요약
속임과 속음, 믿음의 본질
믿음은 속임 없이 성립하지 않으며, 제대로 속였다면 반드시 속게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믿음은 끊임없이 속이고 속는 과정입니다. 야곱이 에서인 척 아버지 이삭을 속였던 것처럼, 실제와는 다르게 말하고 여기는 것이 속임과 속음이며 이것이 바로 믿음의 내막입니다. 속임과 속음이 없으면 믿음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예언적 비유로서의 야곱의 사건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인 사건과 아들들에게 속아 넘어간 사건은 단순히 윤리적 잘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해석해야 할 예언적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유적인 사건을 통해 십자가와 관련된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야곱의 속임과 속음은 실제와는 다르게 말하고 여기는 것으로, 이는 믿음의 본질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비유적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과 야곱의 속음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 아래에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고 지나치게 관여했다면 이 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야곱을 속여 요셉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을 끊으셨습니다. 야곱이 요셉이 죽었다고 속아 넘어간 13년 동안,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과 배려가 끊어진 상태에서 총리가 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을 위해 야곱을 속이신 것입니다.
‘본래의 나’, ‘실제의 나’, ‘믿음의 나’
우리는 세 가지 '나'를 가집니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본래의 나’로,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육체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둘째는 죄와 저주에 찌들어 마음이 육체에 유착된 ‘실제의 나’로, 육체의 오감에 빨려 들어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마음이 들어감으로써 성립하는 ‘믿음의 나’입니다. ‘믿음의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우리 옛사람이 죽었다고 여기는 의식이 유지될 때만 존재합니다.
‘믿음의 나’의 작동 방식: 속임과 우김
‘믿음의 나’는 항상 육체를 입은 ‘실제의 나’를 나로 인식하는 자동적인 경향과 싸워야 합니다. ‘실제의 나’와는 다르게, 예수님의 몸을 입었다고 말하고 주장하는 것이 믿음의 작동 방식입니다. 이것은 실제와 다르기에 속이는 것이며, 이러한 속임과 우김이 없다면 ‘믿음의 나’는 삶의 현장에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속임으로써 이루어지는 ‘믿음의 나’와 속음
‘믿음의 나’는 속여야만 존립할 수 있습니다. ‘실제의 나’는 죄와 저주에 찌들어 육체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의 나’와는 다른 ‘믿음의 나’를 주장하고 속이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이러한 속임이 있을 때, 몸이 있기 때문에 관계하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서 죽은 것 같이 속아 넘어가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야곱이 요셉이 죽었다고 속아 넘어갔기에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도 속아야 합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속아 넘어간 후, 13년 만에 비로소 영광의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왕을 축복하며 세상의 모든 좋음과 영화가 복이 아니라, 오직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요셉의 빈자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믿음의 나’를 주장하며 속이지 않으면, 진정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의 완성: 속이고 속아서
의식적으로 예수님의 몸을 입고 있는 ‘믿음의 나’를 주장하지 않으면 믿음은 없습니다. 죄와 저주에 찌든 ‘실제의 나’로부터 벗어나, 실제와는 다른 ‘믿음의 나’를 속이는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주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속이면, 몸이 있기 때문에 관계하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서 죽은 것 같이 속아 넘어갑니다. 속이고 속아서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믿음의 본질이 왜 속임과 속음인가요?
- ❓야곱의 사건이 예언적 비유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하나님께서 야곱을 속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본래의 나', '실제의 나', '믿음의 나'는 각각 무엇을 의미하나요?
- ❓‘믿음의 나’를 주장하기 위해 왜 ‘속여야’ 하는가요?
- ❓‘믿음의 나’와 ‘실제의 나’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 ❓진정한 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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