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람 특징에 맞춤형 축복하기 (창 49:1~33)

📖 창 49:1~33시즌III_구약창세기-3

설교 요약

야곱의 열두 아들에 대한 마지막 축복은 표면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유다와 요셉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들들에게 향한 말들은 축복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인격적 특질에 대한 지적이나 심지어 저주에 가까운 표현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축복이 세상적인 풍요나 성공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야곱은 백삼십 년의 삶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고,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복은 바로 삼위 하나님의 일체 되심 안에서 영광의 하나님을 마주하며, 하나님의 존재감과 소유감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땅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살아지는 삶이 진정한 복이며, 이러한 복은 나의 주체성의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인격적 특질의 저주: 주체성의 죽음

야곱이 아들들의 인격적 특질을 언급한 것은 축복의 전 단계로서, 그들의 주체성이 반드시 죽어야 함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르우벤의 '물의 끓음 같음', 시므온과 레위의 '칼은 폭력의 도구', 단의 '길섶의 뱀', 납달리의 '놓인 암사슴' 등은 각자의 인격적 색깔과 그로 인해 발현되는 주체성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주체성은 영광의 세상 것을 바라보며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옛 야곱의 모습과 같습니다. 야곱은 이들이 400년 노예 생활이라는 '노예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인격적 특질과 주체성이 반드시 죽어야 함을 축복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를 반복하시며 질책하신 것처럼, 참혹한 고난을 통해 주체성이 묵사발 나야만 진정한 복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유다와 요셉: 축복의 문턱에 선 자들

유다와 요셉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축복의 문턱에 서 있거나 이미 복을 누리는 자들로 묘사됩니다. 유다는 자신의 주체적인 삶이 혼돈과 파국을 가져옴을 깨닫고 베냐민을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격적 특징과 색깔이 괴물을 만들 수 있음을 알았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축복의 문턱에 서게 되었습니다. 반면 요셉은 이미 영광의 하나님을 마음에서 지켜내고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살아지는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축복은 현재의 풍요로움과 하나님의 주권적 이끄심 안에서의 안정을 묘사하며, 이는 아버지 야곱보다 앞선 영적 선배로서의 위치를 보여줍니다. 요셉의 삶은 이미 이루어진 축복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축복의 재정의: 저주를 통한 복

우리는 흔히 세상적인 것을 많이 얻는 것을 축복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갖고, 땅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살아지는 삶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주체성, 즉 나의 인격적 특질과 색깔이 드러나는 삶이 십자가를 통해 완전히 삭제되고 말살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아들들의 인격적 특질을 언급하며 때로는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한 것은, 바로 그 주체성이 죽어야만 진정한 복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저주는 그들의 잔혹한 인격적 특질이 죽어야 함을 강조하며, 이는 진정한 복을 아는 자가 상대방에게 퍼부어야 하는 최선의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 주체성의 완전한 소멸

야곱의 축복은 결국 십자가 생활화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인격적 특질과 색깔에서 비롯된 주체성은 노예 생활로 예표된 십자가를 통해 뿌리 뽑혀야 합니다. 이러한 주체성이 멸절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선민에게 허락하신 참된 복, 즉 하나님을 마음껏 누리고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야곱이 언급한 '없어져야 할 것들'은 곧 진정한 축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우리의 주체성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완전히 소멸되도록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이 있고 실감 나는 축복입니다.

세상 복에 대한 오해와 참 복

죄와 저주에 찌든 상태에서는 세상 것을 갈망하며 그것을 얻기 위한 주체성이 발동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세상적인 것을 많이 받으라는 말은 축복이 아닌 진정한 저주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마주하고 마음에 하나님을 갖는 진정한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의 인격적 특질과 색깔이 드러나는 상태는 저주를 받아야 하고 말살되어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읽어야 합니다. 없어져야 할 것을 이야기함이 곧 축복이며, 우리의 축복의 개념 자체가 이러한 십자가 복음의 관점에서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각 사람 특징에 맞춤형 축복하기>의 줄거리 : 야곱이 무슨 축복을 하든지 운명적으로 400년간의 노예 생활이 그 자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야곱이 성령의 감동으로 아들들에게 축복한다면 어떤 내용들이 되어야 할까요? 열두 아들이 각각 특이한 인격적인 특질을 가지고 있고 이런 특질들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삶을 사는 한 절대로 참 축복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마지막으로 열두 아들 각각이 참된 축복에 이르려면 노예 단계를 거쳐 없어져야만 할 인격적인 특질들을 나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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