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도배 (출 7:14-25)
설교 요약
바로의 완악함과 하나님의 주권
바로의 완악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시고 스스로 계신 자이심을 알리시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고집을 이용해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자신을 히브리인뿐만 아니라 애굽인에게도 알리십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참된 '나'**이시며, 인간의 '나'는 그분에 의해 존재함을 보여주는 첫 단계입니다.
인간의 '나'와 재앙의 내포
열 가지 재앙은 하나님의 '나' 앞에서 인간의 '나'를 고집하는 자들에게 내려집니다. 이러한 재앙은 이미 인간의 '나'를 고집하는 삶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판은 곧 비판받을 것을 의미하며, 이는 자신의 판단 기준을 붙잡고 사는 삶 자체가 재앙적 요소를 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를 고집하는 삶의 재앙적 성격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은 모든 것을 한 가지로 도배해버리는 재앙적 성격을 상징합니다. 이는 마치 마이더스 왕이 만지는 것마다 금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자신의 '나'가 살아 움직이는 삶은 모든 것을 왜곡하고 파괴합니다. 물과 피 모두 소중하지만, 한쪽이 다른 쪽을 대체하는 것은 재앙입니다.
프로이드와 리비도의 재앙
프로이드의 리비도 개념은 삶의 에너지가 성적 충동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며, 모든 삶의 에너지를 성적인 힘으로 환원시킵니다. 이는 마치 애굽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한 것처럼, 삶의 모든 영역을 성(sex)으로 도배해버리는 재앙입니다. 성은 축복이지만, 그것으로 온 삶을 도배하는 것은 재앙입니다.
마르크스와 유물론의 재앙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정신과 영적인 것을 부정하고 오직 물질만을 근원적인 것으로 봅니다. 이는 세상을 돈으로 도배해버리는 재앙입니다. 자본주의 역시 물질적 성공을 최우선으로 삼아, 자녀를 돈 버는 기계로 만들고 대학과 직장에만 매몰되게 합니다. 이는 모든 것을 돈으로 쳐발라 버리는 재앙입니다.
사상가들의 '나' 중심 재앙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은 자신의 생각으로 존재의 근거를 삼는 '나'의 고집을 보여줍니다. 칸트의 도덕성, 슐라이어마흐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할 때 발생하는 재앙입니다. 이러한 사상들은 세상을 특정 가치로 도배해버립니다.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죽음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나'를 십자가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나'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모든 것을 은혜와 축복으로 허락하십니다. 반면, '나'가 주도하는 삶은 한 가지로 온 세상을 도배하며 재앙을 자초합니다. 스스로 계신 여호와의 '나' 앞에서 십자가를 붙잡고 인간으로서의 '나'를 죽이는 것이 관건입니다.
하나님의 '나'가 살아 움직이는 삶
바로 왕처럼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판단하기에는, 내가 해야지'와 같은 말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가 살아 움직이는 삶만이 진정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제자리를 찾을 때, 비로소 재앙이 아닌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하나님만이 '참 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인간의 '나'를 고집하는 삶이 왜 재앙적인가요?
- ❓프로이드의 리비도 개념이 어떻게 재앙과 연결될 수 있나요?
- ❓마르크스의 유물론이 '돈으로 도배하는 재앙'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 ❓십자가 앞에서 '나'를 죽이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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