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가만히 있기’ (출14:15~31)
설교 요약
‘가만히 있기’의 두 가지 얼굴
우리는 종종 위기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홍해 앞에서 두려워하는 백성에게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창조적인 이끄심을 경험하게 하는 구원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진도 앞바다 세월호에서는 선장의 지시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울려 퍼졌고, 이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가만히 있기'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향하는 길과 세상의 절망으로 향하는 길, 두 가지 극명한 결과를 낳습니다.
기독교의 기도와 동양 종교의 명상
현재 세상에는 두 종류의 '가만히 있기'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기독교의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불교나 힌두교 등의 동양 종교에서 말하는 '명상(冥想)'입니다. 기독교의 참된 기도는 세상의 문제나 소원에 묶인 상태가 아니라, 어떠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더 크심을 믿고 그분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 반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반응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명상의 허점과 기독교의 차별성
명상은 마음의 고통을 해방시키기 위해 집착에서 벗어나 순수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는 시도입니다. 세상일에 매여 끌려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점에서 '가만히 있기'와 유사해 보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만히 있기'는 얽매임 자체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에게 완전히 얽매이기 위한 것입니다. 동양 종교의 명상이 외부 상황을 '공(空)'으로 여기며 내면의 평정심을 추구하는 반면,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얽매이려 합니다. 세월호 비유처럼, 명상은 가라앉는 배 안에서 평정심을 찾는 것과 같아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주기도문과 십자가, ‘가만히 있기’의 실제
진정한 '가만히 있기'는 세상의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십자가 사건을 전제로 하고 십자가를 생활화할 것을 전제로 하는 주기도문을 통해 실천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품에 안겨 '가만히 있기'가 유지됩니다. 주님께서도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계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께 안겨 '가만히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의미
주기도문의 첫 구절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내 마음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 하나만 남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컴퓨터 아이콘처럼 우리 마음에는 수많은 관계와 대상들이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십자가를 통해 이 모든 아이콘을 지우고 오직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남기는 것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불교의 '공(空)' 사상과는 달리, 실재하는 존재들과의 관계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가만히 있기’
마음에서 세상의 관계들에 대한 아이콘을 지우고 하나님의 이름만 남길 때, 우리는 그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이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죽고 하나님만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따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만나게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으시고 홍해의 기적처럼 우리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올바른 '가만히 있기'는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기독교의 기도와 동양 종교의 명상은 어떻게 다른가요?
- ❓'가만히 있기'가 왜 두 가지 다른 결과를 가져오나요?
- ❓주기도문은 '가만히 있기'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 ❓마음속 '아이콘'을 지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왜 중요한가요?
-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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