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하나님 보려면 가만히 있기 (출 14:1~14)

📖 출 14:1~14시즌III_구약출애굽기-3

설교 요약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삶의 조건

우리는 종종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을 넘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자신이 직접 움직이시는 경험을 갈망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가능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주변이 아무리 급박하게 요동쳐도 내 몸과 마음이 고요할 때,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우리의 역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세상에 대해서는 건성으로 행동하며 하나님의 치밀한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움직이시고자 할 때, 우리는 그 보조를 맞추어야 하며, 그 방식이 바로 '가만히 있기'입니다. 만약 우리가 가만히 있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나서시려는 계획을 수행하실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기'의 진정한 의미

'가만히 있기'는 단순히 겉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의 두려움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 내 마음이 그것에 반응해서는 안 됩니다. 내 마음이 반응하지 않으면 당연히 몸도 움직일 일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기를 할 수만 있다면 내 삶의 현장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내가 가만히 있기를 해야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조를 맞추는 행위입니다.

스스로 할 수 없음의 깨달음

예수님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가만히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미력이나마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고, 두려움도 없어집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내가 움직여서 피해야 한다'고 여기는 중에는 두려움이 생기지만, 전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면 두려움조차 사라집니다.

세상 기준을 넘어서는 하나님

우리는 종종 사업이 안 될 때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사업을 잘 되게 해주시겠지'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입니다. 사업이 완전히 망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홍해 건너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직전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즉 '될 대로 되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때 하나님이 움직이시기 시작하셨고,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기의 생활화'와 십자가

'가만히 있기의 생활화'는 예수님의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십자가는 머리가 죽고, 손발이 죽고, 배의 소원이 죽고, 모든 감각이 죽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붙잡는 것은 자발적이기에 가만히 있게 됩니다. 내가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못 박혔기에 가만히 있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만히 있기를 하면 두려움도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중심

가만히 있기는 이 세상의 삶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형통의 방향으로 나가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형통을 위해 써먹는 것은 가만히 있음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기란 내 삶의 방향이 어떻게 되더라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삶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문제를 잘 해결해 주실 것을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설령 세상에서 망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면 할 수 없다고 여길 뿐입니다. 하나님이 있게 하시는 대로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대로 될 것이라고 여길 때 두려움은 없어집니다. 이것이 세상에 대한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될 대로 되라

가만히 있기는 우리가 꼭 해내야 할 십자가를 붙잡는 방식입니다. 십자가를 붙잡되, 가만히 있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될 대로 되라는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이라면 세상에서 나쁘다고 여기는 일일지라도 다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 열 번 중에 단 한 번도 나쁘게 인도하신 적이 없습니다. 설령 세상 기준에서 나쁘게 되더라도 나는 상관하지 않으므로 가만히 있을 수 있고 두려움조차 없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가만히 있기의 완성'입니다.

본문 도입부

<삶에서 하나님 보려면 가만히 있기>의 줄거리 :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 말고 혹시 삶의 현장에서 아예 하나님 자신이 움직이시는 일은 없을까요? 왜 없겠습니까. 우리는 내 삶의 현장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주변이 아무리 급박하게 요동치더라도 내 몸과 내 마음이 가만히 있을 수 있다면 삶의 현장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째야 우리는 실제 삶의 현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