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목마르냐? 나도 목마르다! (출 15:1~27)

📖 출 15:1~27시즌III_구약출애굽기-3

설교 요약

홍해의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은 찬양과 함께 시나이 반도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나 불과 사흘 길, 약 53km를 걸어 도착한 마라에서 물을 얻지 못하고 쓴물을 마시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물 부족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마름을 드러내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있는 자처럼 행동하는 완악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 있게 되는 방향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마라의 쓴물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완악함의 실체: 스스로 있는 자의 오만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만물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인간, 특히 바로와 이스라엘은 스스로 있는 자처럼 행동하며 우주적 방향성을 거스릅니다. 이는 자신의 뜻대로 만물을 있게 하거나 없게 하려는 완악함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계명과 규례를 지키라고 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이 있게 하시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통해 완악함을 벗어나야 열 가지 재앙과 같은 삶의 고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엘림을 앞두고 마라에 멈춘 이유: 하나님의 기대

마라에서 엘림까지는 불과 10km, 반나절 거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를 예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고 불평하는 대신, 하나님의 목마름을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양 너머, 그들의 마음에서 진정한 응답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자신들의 미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목마름을 가중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목마름: 당신의 매력을 향한 응답을 기다리심

하나님은 430년간의 노예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며 자신의 위대함과 사랑을 아낌없이 드러내셨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그러셨듯,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을 좋아할 수 있도록 모든 매력을 뽐내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응답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목마름이 극심해집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했지만, 정작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음이며, 마라의 쓴물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 완악함입니다.

십자가 나무: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유일한 길

마라의 쓴물은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상징합니다. 이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것은 오직 십자가 나무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스스로 있게 하고 없게 하려는 완악함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대로만 살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붙잡을 때, 우리의 완악한 쓴물은 하나님께서 달고 시원하게 느끼시는 단물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 세상의 목마름을 하나님의 목마름으로 전환

세상을 향한 나의 목마름을 느낄 때, 우리는 반나절 거리의 엘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나의 목마름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목마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목마름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마시고 하나님을 먹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밀착하여 그 뜻대로 살아가려는 고백을 드릴 때, 우리는 세상의 결핍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대체하며 엘림의 구간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며 목마름을 해결하시는 기쁨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네가 목마르냐? 나도 목마르다!>의 줄거리 : 마라의 쓴 물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라는 엘림의 오아시스에서 불과 10km 떨어진 곳입니다. 이 짧은 구간을 버티지 못하고 마라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던 이스라엘로서는 무색할 상황입니다. 마라의 쓴 물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본래 이스라엘의 식수 마련을 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마름을 이스라엘에게 드러내 알려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로의 완악함에 대해 갖가지 재앙을 내리시면서 속량하신 이스라엘이 그런 완악함에서 벗어났기를 바라시는 목마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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