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아닌 ‘죽기’의 상번제 인생관 (출 29:38~46)
설교 요약
십자가 생활화는 '살자!'가 아닌 '죽자!'는 인생관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죄와 저주에 찌든 선민은 자신의 죄악됨을 알기에 감히 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손대는 모든 것에 죄가 묻어나는 자신의 체질을 알기에 인생은 **'죽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음에도 하나님을 빗나가려는 자신을 죽이는 일, 이것이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상번제의 의미: 매일의 죽음
출애굽기 29장 38-46절의 상번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린 양 두 마리를 제단에 바치는 규례입니다. 이는 365일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린 양을 바치는 상번제를 통해 인생을 보는 상번제 인생관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인생관이 정의하는 인생은 ‘살기’가 아닌 ‘죽기’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사느냐 죽느냐'는 선민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선민에게 주어진 명확한 답은 죽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죄와 저주의 실체: 마음의 배설물
선민 역시 죄와 저주에 찌든 채 태어납니다. 내 속에서 죄와 저주는 계속 흘러나오며, 이는 마치 인분통에 빠진 것처럼 지독한 상태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태에 대해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하나님만을 담아야 하는 곳인데, 세상 것을 담는 순간 그것은 배설물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의인은 없으며, 모두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무익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세상 것을 마음에 담을 수 없습니다.
‘죽기’ 인생관의 필연성
죄와 저주의 체질은 마음에 배설물을 담아도 거부감이 없는 상태입니다. 돈을 벌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형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배설물과 같습니다. 죄와 저주의 상태에서는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선민은 이것을 알기에 인생관이 **‘죽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죄와 저주의 힘은 오직 죽음으로만 제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번제와 십자가 생활화
상번제에서 바쳐지는 어린 양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상번제 어린 양의 죽음은 바로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노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 고백했습니다. 상번제는 십자가 생활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번제가 드려지는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기로 하셨습니다. 상번제를 생활화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죽어버린 종교 행위일 뿐입니다.
상번제 참여: 마음의 동일시
이스라엘 백성은 각자의 삶의 현장에 있지만, 상번제가 드려지는 시간 동안에는 마음을 성막 뜰의 번제단으로 보내야 합니다. 이는 곧 죽고 각이 떠져 불타는 어린 양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백성은 어린 양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동일시함을 통해 상번제에 참여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상번제를 기억하며 내가 죽었음을 고백함을 통해 하나님을 실제로 만날 수 있습니다. 선민이란 매일 아침저녁으로 막대한 시간을 들여서 상번제 어린 양과 함께 내가 이 세상에 대해 죽은 자임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죽기’의 삶, 날마다의 소천
상번제 어린 양의 죽음은 나의 죽음입니다. 소천(召天)은 육체가 죽는 순간에만 붙일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선민은 날마다 소천하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세상에 대해 완전히 죽고 배설물을 전혀 담지 않은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나 하늘로 올라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이것이 상번제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는 소천의 인생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던 일 다 멈추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따라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관입니다.
십자가: ‘죽기’로 전환하는 스위치
십자가는 내 인생을 ‘죽기’로 전환하는 스위치입니다. 십자가를 의식에서 잊어버릴 때 내 인생은 자동으로 ‘살기’로 전환됩니다. 그럴 때 죄와 저주가 활성화되면서 마음속에는 이 세상 것들을 배설물로 가득 담게 됩니다. 인생은 ‘살기’가 아닌 ‘죽기’입니다. 하나님이 내 몸을 통해 사셔야 하고, 나의 인생관은 언제나 ‘죽기’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 ‘죽기’가 상번제의 인생관입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상번제의 어린 양과 나를 동일시하며 죄와 저주에 찌든 나는 죽었다고 인정하는 삶을 살다 보면 다른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기’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관은 어린 양 예수님과 함께 ‘죽기’를 하는 상번제의 인생관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상번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려졌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 ❓죄와 저주에 찌든 상태에서 '죽기' 인생관을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 ❓다니엘의 기도가 상번제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 ❓십자가 복음 방송이 '날마다 죽이는 일'을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 ❓‘살기’가 아닌 ‘죽기’의 상번제 인생관을 확립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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