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방자한 괘씸한 교인 놈아! (출 32:25~35)
설교 요약
국어사전에서 '방자하다'는 '무례하고 건방지다'로 풀이되지만, 히브리어 원어 '파라(פָרַע)'는 '풀어놓다, 내버려 두다'라는 뜻을 지닌다. 이는 생각, 말, 행동을 제어하는 구속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보고 알며, 사랑하고 생각하신다는 '하나님 관련 사실들'은 본래 우리 마음의 양심이자 구속력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사실들을 잊고 마음이 풀려나와 제멋대로 행동함으로써 '방자함'에 빠졌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죄와 저주에 찌든 무지함과는 다른, 선민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유일성: 하나님 관련 사실의 구속력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유일한 있음, 유일한 좋음, 유일한 주권자이심이 생생하게 살아 구속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그의 마음에서 풀려나왔다면, 이삭에 대한 강력한 존재감과 좋음, 그리고 스스로 주권자가 되려는 모습이 나타났을 것이다.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그의 생각, 말, 행동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면, 그것이 바로 방자함이다. 선민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주신 자들이지만, 마음에서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퇴색하면 선민 아닌 자들과 똑같이 행동하게 된다.
우리의 가나안: 하나님 관련 사실로 이루어진 공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육체보다 마음이 '하나님 관련 사실들'로 둘러싸인 공간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라셨다. 어디를 보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시며, 모든 것을 생각하고 계심을 느끼는 상태, 즉 하나님이 유일한 있음, 유일한 좋음, 유일한 주권자시라는 사실에 마음이 갇히는 것이 진정한 가나안 복지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의도를 져버리고 세상에 다시 얽매여 방자함에 빠졌다. 이는 의의 도를 안 후에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
십자가의 능력: 세상에 대해 죽은 자의식
방자함에서 벗어나 하나님 관련 사실들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은 자라는 의식을 절대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동일시의 믿음을 통해 우리 마음은 육체를 벗고 예수님의 몸을 입어 부활과 승천을 따라 보좌 우편에 이를 수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세상에 대해 죽은 자라는 자아의식을 놓치기 쉬우며, 이로 인해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더 이상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방자한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지도자의 책임: 방자함을 용인하는 아론
본문에서 모세는 지도자 아론에게 방자함을 용인한 책임을 묻는다. 주동자급의 방자함이 먼저 있었지만, 아론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 관련 사실들로 이루어진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이는 오늘날 목회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목회자에게서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생각, 말, 행동에 대해 실시간으로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교인들은 '교인 놈들'이 되고 목사는 그들의 요구에 맞춘 설교를 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양심으로 작용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방자함의 심각성: 생명책에서의 지워짐
방자함은 하나님이 선민의 있음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셨지만,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양심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진정한 복지로 들어갈 수도, 하나님의 존재감을 느끼게 할 수도 없다. 이로 인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도 육체가 죽을 때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 하나님 관련 사실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방자하게 된 상태이며, 이는 금송아지를 만들 것을 요구한 주동자 3,000명이 도륙당함으로써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기회를 상실했던 것과 같다.
진정한 복지: 하나님 관련 사실들의 생생한 기억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유일한 있음, 예수님께서 누리신 유일한 좋음, 그리고 참새 한 마리의 떨어짐까지 주관하시는 유일한 주권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이 사실이 이론으로라도 믿어지고 의미를 갖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우리 마음에서 생생하게 살아있을 때, 생각, 말, 행동 하나하나가 이에 맞춰질 수 있으며, 마음은 진정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다. 신앙의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큰일이며,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양심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 수 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방자함이란 정확히 무엇이며, 왜 선민에게 더 심각한 문제인가?
- ❓하나님 관련 사실들이 우리의 삶에서 구속력으로 작용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십자가 복음은 방자함에서 벗어나 진정한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 ❓지도자로서 방자함을 용인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며, 우리는 어떻게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가?
- ❓하나님 관련 사실들을 잊어버리고 방자하게 살아갈 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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