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안 하심이 정말 다행인 경우 (출 33:1~16)

📖 출 33:1~16시즌III_구약출애굽기-3

설교 요약

하나님과의 동행, 역설적 사랑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이 때로는 가장 큰 사랑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이 뻣뻣하여 마음의 시선이 세상을 향해 고정되어 있을 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만약 함께하신다면 우리의 죄악 때문에 우리를 진멸하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멸하지 않으시면서 사랑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는 불행 중 다행이며, 차선책의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차선책의 사랑은 반드시 종료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저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목이 뻣뻣함, 마음의 시선이 빗나간 상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 칭하신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향해 뻣뻣하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특정한 대상의 존재감을 느끼고, 그 대상을 좋아하여 채우려는 기능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세상을 향해 존재감을 느끼고, 세상을 소유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목돌림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보다 공의가 발현되어 진멸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장신구, 세상 가치를 향한 마음의 증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장신구를 떼어 내라고 명하셨습니다. 당시 장신구에는 우상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우상이 상징하는 세상의 가치를 잊지 않겠다는 결심과 같았습니다. 금송아지 숭배 역시 세상의 풍요와 다산을 바라는 마음의 시선을 24시간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짐으로써 마음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장신구는 세상 가치를 향한 마음의 시선을 의미했습니다. 장신구를 떼어 내는 것은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을 마음에서 떼어 내겠다는 결심을 촉구하는 행위였습니다.

회막,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훈련 장소

모세가 만든 회막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임시 장소였습니다. 회막은 이스라엘 진영 바깥에 설치되어 삶의 현장과 관심사를 차단하고,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훈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구름 기둥이 내려오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며,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했습니다. 250만 이스라엘 백성은 각자의 장막 문 앞에 서서 모세에게 마음을 보냈고, 모세는 그 모든 마음을 담아 회막 안에서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이 모이는 교회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친히 이끄시는 은혜

회막을 통한 반복적인 만남으로 이스라엘은 삶의 관심사를 차단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지 않으시겠다는 마음을 돌이키시고 친히 이스라엘을 이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 얼굴이 가리라'는 말씀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티끌 같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과 관계하시며 계획을 이루어가심을 의미합니다. 또한 '내가 너에게 쉼을 주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백성들을 이끄시기에 모세에게 쉼이 주어짐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돌릴 때 주어지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은총의 자리, 마음을 드리는 지속적인 순종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름을 아시고, 그가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마음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로 향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은총의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음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회막으로 들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을 보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라 아버지께 가는 길을 반복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지로 이끌림 받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일만 계속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함께 안 하심이 정말 다행인 경우>의 줄거리 : 함께하지 않으심으로써 나를 사랑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처지를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성인 공의로우심을 스스로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는 한 목이 뻣뻣하여 마음의 시선을 세상을 향해 고정한 나와는 함께하지 않으심이 나를 진멸하지 않으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목이 뻣뻣한 나를 그래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실 수 있는 차선책이 바로 나와 함께하지 않으심입니다. 그러고 보면 함께하지 않으심이 불행 중 다행이지요. 그러나 차선책의 사랑은 반드시 종료되어야 합니다. 이 차선책의 사랑이 끝끝내 유지될 수밖에 없다면 결국은 영원히 함께하시지 않는 저주로 끝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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