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 죽음을 봐야 멈추는 생각하는 광기_태승…

📖 사도행전 27장 1절~26절특별설교특별설교

설교 요약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조차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사도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누구에게나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른 말씀의 정체는 바로 **‘나의 생각’**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동안, 즉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동안,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주권자로서 나의 모든 삶의 순간에 대한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가장 부조리하고 반역적인 광기입니다. 이 광기를 멈추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생각하는 광기가 멈출 때, 모든 것이 달라진다

‘나의 생각’이라는 광기만 끊어지면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유 없는 평강이 주어지고, 이 땅에 대해 갖고 계신 하나님의 생각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삶의 구석구석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음을 느끼게 되며,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이러한 변화는 생각이라는 광기가 멈출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신 앞에서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지독한 미친 짓이며,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몸서리치십니다. 왜냐하면 그 생각이 망하는 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인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차단하다

사도 바울 일행이 탄 배가 거친 풍랑을 만난 사건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상태가 실은 전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라고 여기는 생각들이 실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까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지적합니다. 배의 선장, 선주, 백부장은 겨울을 나기에 미항보다 뵈닉스가 더 낫다는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에 따라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알기로 작정한 사람이었기에, 스스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결국 14일간의 혹독한 광풍 속에서 생존의 여망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생각이 전달된다

14일 동안 끊임없이 몰아치는 광풍과 파도 속에서 배에 탄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코앞에 죽음을 직면하고서야 자신의 생각으로는 목숨조차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생각이 전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의 ‘뵈닉스로 가겠다’는 생각은 특별히 죄질이 고약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 주어지는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생각들이 실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 ‘나의 생각’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지독한 과정이 필요한지가 본문을 통해 제시되고 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 나의 죽음을 코앞에서 보는 것

14일간의 광풍과 파도로 인한 굶주림과 죽음의 경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나의 죽음을 코앞에서 보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죽었음을 고백하는 것은 십자가라는 배를 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흑암과 광풍과 파도에 시달리며 죽음을 맛보는 모든 과정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안에 들어있습니다. 십자가는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이 죽는 자리입니다. 나의 생각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생각이 죽고, 하늘로 올라가는 생각

사도 바울은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임을 자처했습니다. 이는 곧 ‘나의 생각’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은 자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생각에 대해 죽었기에 하나님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할 때, 나의 생각은 세상에 대해 죽습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생각이 살아납니다. 이때 예수님의 승천은 화살표가 되어, 생각이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십자가에서 생각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생각이 살아나 승천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의식의 작용 없이는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연쇄과정을 통한 기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쇄과정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제 삶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삶에 대한 저의 생각은 죽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다시 살아난 생각을 갖게 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화살표 삼아 하늘로 올라가 주님 안에서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만을 기억하게 하시고, 아버지만을 소망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가지고 계신 생각들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나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뿐인데, 마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평강이 주어집니다. 삶의 모든 구석구석마다 하나님의 주권과 생각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의 생각을 죽이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생각을 죽이는 것뿐입니다.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나의 생각은 나의 죽음을 코앞에서 볼 때 끝이 납니다.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14일 동안 시달린 것처럼, 죽음이 기정사실이 될 때 비로소 생각은 멈추게 됩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을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14일간의 광풍은 주님의 십자가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나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죽은 자다.”라고 고백할 때 생각의 광기는 멈춰지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생각이 다시 살아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화살표 삼아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찾고 기도하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든 끊임없이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고백하며 생각하는 광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코앞 죽음을 봐야 멈추는 생각하는 광기 사도행전 27장 1절부터 26절까지 1.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2.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3.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4.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5.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6.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7.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8.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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