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마음충만 충전소 '태초'

📖 요한복음 1장 1절~5절특별설교특별설교

설교 요약

마음의 공백과 세상의 채움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들어오실 수 있는 공백으로 지어졌습니다. 마치 스위치가 켜진 진공청소기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 크기의 마음 공백을 채우려 합니다. 이 마음은 육체로 접하는 모든 대상을 빨아들이려는 성향을 가집니다. 이로 인해 마음이 괴롭고 힘든 것은 일이 안 풀리기 때문이 아니라, 빨아들여서는 안 될 것을 빨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잘 차려놓은 식탁 위에 진공청소기를 들이대면 음식인지 모르고 다 빨아들이듯, 우리 마음은 이 세상을 절대로 빨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충만함: 목적이 아닌 출발점

마음으로 세상을 빨아들이지 않고 살아가려면 마음이 충만해져서 넘쳐나야 합니다. 세상의 삶은 충만함 후에 넘쳐나는 부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넘쳐나고 있다면 더 이상 빨아들이려는 힘은 작용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평강과 기쁨 가운데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명의 삶이자 복지의 삶입니다. 충만함은 목적이나 결과가 아닌 출발점입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기름이 없는 자동차는 주유소로 가듯, 인간은 마음의 충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태초’: 마음의 충전소

본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진공청소기와 같은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빨아들여 채우고자 합니다. 청소기에 들어와서는 안 될 것이 들어오면 봉투가 찢어지듯, 우리 마음도 들어와서는 안 될 것이 들어오면 아프고 괴롭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는 충전소의 이름이 바로 ‘태초’입니다. 세상으로 마음을 채우고자 하는 한 마음은 절대 충만해질 수 없습니다. 충만함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을 세상에서 빼내어 태초로 보내야 합니다.

요한복음의 ‘태초’와 삼위일체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태초’는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신비한 곳이 아니라, 완전히 세상 밖에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창세기에서 언급된 태초가 피조세계의 첫 출발점이라는 시간적 의미를 가진다면, 요한복음의 태초는 마음의 충만을 위한 충전소이자 모든 세대가 향해야 할 세상 밖에 있는 장소입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로 계시며 서로를 기쁨으로 채우고 계셨습니다. 이 상태가 바로 우리의 마음이 향해야 할 태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지금도 일체되심 안에 계심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과 창조의 기쁨

본문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고스란히 담고 계시기에 ‘말씀’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를 담고 일체로 계시다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시는 관계에서 오는 기쁨의 넘침으로 창조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 삼위일체에서 발생하는 충만하고 넘치는 기쁨으로부터 창조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생명과 빛, 그리고 어둠의 깨달음 없음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말씀처럼, 예수님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곧 생명이시며 빛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받아들이시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빛으로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대상을 빛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심에서 별이 보이지 않듯이, 마음에서 다른 대상들을 빛으로 보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럴 때 마음의 충만함도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을 생명이자 빛으로 삼으셨고,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께 모든 관심을 보내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명이자 빛으로 삼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태초로의 복귀

우리의 마음이 태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떠나야만 합니다. 이것이 곧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마음을 보내는 것이 곧 세상에 대해 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죽은 마음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에 참여하게 되고 하늘을 향하게 되는데, 이 하늘이 바로 태초입니다. 태초는 마음의 충만을 위한 유일한 충전소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해져서 넘쳐나게 될 때에 비로소 기쁨과 평강한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봄을 지속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고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질그릇이 보배를 담듯이 주님의 십자가를 우리의 인격에 담고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마음충만 충전소 ‘태초’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5절까지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마음충만 충전소 ‘태초’>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마음충만 충전소 ‘태초’ 요즘 전기차가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나 대형마트의 주차장 한쪽에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전기차의 충전을 위해서는 전용의 충전시설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 또한 ‘태초’라는 충전소로 가지 않으면 충만함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