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교회(6)-베드로의 망각
설교 요약
베드로의 고백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이것이 인격적인 고백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사건이 필수적입니다. 즉, 주님의 십자가를 내 것으로 삼고 마음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 사건 위에 서 있으며, 이 지점을 놓치면 본질을 잃게 됩니다. 교회는 십자가 문을 통해 세상을 떠나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따라 하늘에 이르는 마음의 모임입니다.
변화산 사건: 황홀감과 망각
변화산 사건은 베드로가 황홀감을 경험하며 산 아래의 모든 일을 잊는 망각을 보여줍니다. 이는 아직 세상에 대해 죽지 못하고 세상에서 기쁨과 만족을 찾는 베드로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잠시 보았을 때, 그는 세상에 대한 희망과 확신, 심지어 가족과 동료의 존재까지도 잊어버렸습니다. 이는 세상과의 뜨거운 열애가 일시에 사라진 상태이며, 하늘나라의 극히 일부분을 대면했을 뿐인데도 세상 가치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세상과의 죽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변화산으로 데려가신 이유는, 십자가를 자신의 십자가로 만드는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죽음이 일어나야 함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는 주님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을 들이는 것이며, 돈으로 만족하고자 했던 마음이 죄악임을 인정하고 죄 없으신 주님의 빈자리에 들어가 주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세상의 가치들을 완전히 등지고 버려야 하며, 이러한 세상에 대한 죽음에 대해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가 믿는 것: 하늘나라의 황홀감
교회는 하늘나라가 주는 황홀감을 믿습니다.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조차도 하늘나라가 눈앞에 펼쳐질 때에는 완전히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들임을 믿는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을 통해 교회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모든 가치는 망각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교회입니다.
믿음과 반응의 차이
변화산 사건에서 제자들이 보인 황홀감과 망각은 믿음이 아닌 반응이었습니다. 눈으로 보았기에 가능한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나라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믿음으로 그 황홀감을 느끼기를 원하십니다. 하늘나라를 보았을 때 세상의 어떤 소원도 사라질 것임을 믿음 안에서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들을 망각의 주머니 속에 넣고,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망각의 주머니 속 세상
베드로가 망각했던 것은 세상에서 좋다고 여겼던 것들만이 아닙니다. 억울함, 분함, 아쉬움, 후회스러운 일들까지도 믿음 안에서 하늘을 볼 때 한순간에 사라지고 잊혀 질 것들입니다. 자녀를 앞세운 부모의 슬픔도, 원수에게 해를 당한 아픔도 하늘나라의 가치를 알면 더 이상 불행이나 아쉬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늘나라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 베드로가 느꼈던 황홀감을 믿음 안에서 갖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 나라로 가되, 이 하늘나라가 베드로가 세상 모든 것을 한순간에 망각할 정도로 좋은 곳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베드로의 망각은 단순히 긍정적인 경험인가요?
- ❓변화산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믿음은 무엇인가요?
- ❓하늘나라를 보지 않고도 세상의 가치를 망각할 수 있나요?
- ❓십자가를 통한 세상과의 죽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 ❓교회의 본질이 '마음의 모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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