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몰라야 하나님을 실제로 안다 (호6:1~11)
설교 요약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역설
우리는 흔히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서는 완전히 몰라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역설이 존재합니다. 수천 페이지의 신학 서적을 읽어도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이유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마음이 달라붙어 연합하는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연애를 시작할 때 두꺼운 연애 지침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마음이 끌려 관계를 맺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야다'의 의미: 관계적 앎
히브리어 '야다'는 단순히 지식을 아는 것을 넘어, 친밀한 관계를 맺고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여 가인을 낳은 것처럼, '야다'는 깊은 연합과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앎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야다'로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분을 경험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대하는 경외심에서 시작됩니다.
언약 파기 이전의 상태로의 회복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언약을 어기고 '선악을 분별하는' 상태에 빠진 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의 시작입니다. 이 분별력은 빛과 같아 모든 것을 판단하게 만들지만, 진정한 하나님을 아는 길은 이 분별의 기준을 내려놓고 무지한 상태, 즉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모든 앎과 분별력을 죽이는 사건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새벽빛과 같은 하나님의 나타나심
우리가 십자가를 붙잡고 모든 것을 모르는 상태, 즉 완전한 무지의 어둠 속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은 새벽빛처럼 어김없이 나타나십니다. 이 새벽빛은 가장 어두운 밤이 지나고 오는 빛으로, 우리의 무지함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마치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맞은 농부처럼 우리는 완전히 행복해지고, 삶의 환경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인애'라는 적법한 소생
하나님을 '야다'로 알게 되고, 선악과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하나님을 모시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이때 하나님 이외의 것들이 들어왔을 때 나타나는 야심, 계획, 걱정 같은 '사생아'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인애', 즉 사랑이 나타납니다.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의 행동처럼,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에서 나오는 모든 행동은 진정한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따르는 적법한 소생이 됩니다.
십자가를 통한 '모름'의 추구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힘써 알기 위해서는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모르는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조차 죄로 물들어 있기에,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죽여야 합니다. 완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은 '야다'의 앎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알려지실 것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지한 자가 되십시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하나님을 아는 것이 왜 '모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까?
- ❓'야다'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왜 하나님을 아는 데 중요합니까?
-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앎'과 '분별력'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인애'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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