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생활화와 예수님 다시 못 박기 (히6:1~8)
설교 요약
신앙의 길에는 언제나 두 가지 십자가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활화하며 날마다 기억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날마다 예수님을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중립적이지 않으며,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본질이 결정됩니다.
예수님의 죽음, 누구의 죽음인가?
철학자 강신주의 죽음 분류에 따르면,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의 죽음', '너의 죽음'을 넘어 **'나의 죽음'**이 됩니다. 역사적 사건에서 신앙 사건으로 전환될 때, 예수님의 죽음은 2000년 전 사도 바울에게도, 오늘 우리에게도 현재의 사건이자 나의 죽음이 됩니다. 참 신앙은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시작됩니다.
신앙의 멈춤, '그들의 죽음'으로 전락
일상 속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그들의 죽음'으로 전락하면 신앙은 멈춥니다. 세례 증서나 교인이라는 이름만 남을 뿐, 살아있는 신앙은 사라집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던 나의 죄와 오류가 극복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현재의 사건, 나의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다시 못 박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린다는 것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린다'고 말하지만, 이는 기초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기초 위에 건물을 쌓아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는 외침입니다. 죽은 행실, 즉 육체의 욕구와 판단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과 이유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회개와 세례, 안수를 경험하고도 여전히 육체의 감각대로 반응하며 **'딴 길'**로 나아갑니다.
십자가 생활화: '너의 죽음'이자 '나의 죽음'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육체에 종속되어 세상의 감각에 끌려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자녀가 죽는 것보다, 내 남편이 죽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너의 죽음'**이자 **'나의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해 죽고 부활하신 주님께 이끌려 하나님으로부터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엉겅퀴만 맺는 신앙의 현실
예수님의 죽음을 '너의 죽음'이자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열매 대신 엉겅퀴만 맺힙니다. 직장, 가정, 재정 문제 등 세상의 일에 매몰되어 예수님의 죽음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던 나의 죄악된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교회의 현주소입니다.
반전의 시작: 잊을 수 없는 '너의 죽음'
주님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보다 몇 천 배 더 아파해야 할 너의 죽음이며, 잊을 수 없는 너의 죽음이자 동시에 나의 죽음입니다. 이 진리를 기억할 때 삶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입술, 손끝, 발끝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의 열매들이 맺힐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길을 두고 왜 딴 길로 가는지 안타까워하며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십자가를 '생활화'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우리는 어떻게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있나요?
- ❓신앙생활에서 '엉겅퀴'만 맺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 ❓예수님을 '다시 못 박는' 행위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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