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까봐 무서운 마음이 당연한가? (히2:11~18)

📖 히2:11~18시즌I_신약히브리서-1

설교 요약

죽음의 두려움, 보편적이나 마땅한 것은 아니다

육체가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보편적인 인지상정이지만, 마땅하고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죄가 보편적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본래 에덴동산에서 육체의 죽음은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하신 것은 참 생명, 즉 하나님과 연결된 상태의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육체가 살아있으면 산 것이라는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죽음 안에서 육체가 살아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은 일상을 지배한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입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죽음에 매여 말하고 행동합니다.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맡긴다', '내려놓는다'는 말을 할 때, 사실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주체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죽음을 무서워하는 마음과 연결됩니다.

문제에 대한 '나'의 죽음이 우선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려 할 때, 우리의 관심은 문제 자체에 쏠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문제 삼으시는 것은 당면한 경제 문제나 어려움이 아니라, 문제에 빠져있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문제를 맡기거나 내려놓으려 하지 말고, 그 문제에 대해 '나'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문제를 붙잡고 있는 내 마음이 죽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문제시하시는 것은 바로 이 마음입니다. 이것이 육체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맥락입니다.

상실의 두려움, 죽음 공포의 핵심

죽음이 두려운 핵심 이유는 상실감 때문입니다. 소유, 관계, 신분 등 육체가 살아있기에 주어진 모든 것들이 육체가 죽으면 사라집니다. 나의 정체성마저도 관계 속에서 채워졌기에, 육체가 없으면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돈 문제 앞에서 '나'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내가 그 문제의 주체로 살아남아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시하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이 그 문제에 빠져있다는 것이며, 이 마음이 죽어야 하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만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킨다

마음이 세상에 대해 죽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오신 것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마음을 보낼 수 없기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셔서 우리 마음을 십자가로 끌고 가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마음이 붙잡고 있는 모든 주체성이 죽어버리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손 안으로 들어가고, 우리 마음은 하나님 품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상태에서 얻는 기쁨과 평강은 세상에서 얻을 것도, 죽어서 잃을 것도 없는 참된 행복입니다.

마귀의 속임수, '나'의 죽음을 막는다

마귀는 우리가 죽음에 매여 살게 만들기 위해 두 번째 속임수를 씁니다. '내가 죽어버리면 문제가 그대로 남고, 아무도 해결하지 못해 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에게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문제 역시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문제를 붙잡고 있는 '나' 자신이 죽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해결될 것입니다. 죽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의 핵심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며, 마귀는 이를 이용해 우리를 종으로 삼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육체가 죽을까봐 무서워하는 게 보편적으로 확인 되는 인지상정이지만 당연한 것 즉 마땅한 것은 아닙니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다 마땅한 것은 아니니까요. 죄도 보편적이지만 마땅하고 당연한 것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음을 무서워하는 마음은 단지 죽음을 앞두고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전체가 사실 죽음을 무서워함으로 어둠과 불행의 그늘에 덮여 있습니다. 이제 이 칙칙한 그늘을 벗어나봅니다. 죽을까봐 무서운 마음이 당연한가? (히2:11~18)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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