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말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참 좋다 (히3:1~6)

📖 히3:1~6시즌I_신약히브리서-1

설교 요약

모세와 예수님의 비교 가능성

모든 관계에는 동일화의 신비로운 작용이 일어나듯,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기들을 가까이하심으로 죄 없으신 분이 죄인들의 친구로 불리셨고, 거꾸로 세리와 창기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인들에게 압도적인 존재인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하며, 예수님이 모세보다 얼마나 월등하신 분인지를 강조한다. 이러한 비교는 우리가 어떤 신앙의 자질을 가졌는지, 신앙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영적인 뿌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게 하여 큰 자긍심을 갖게 한다. 비교가 가능한 이유는 모세와 예수님 모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기 위해 보내신 '사도'이며, 하나님과 선민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보내심의 차이: 자기비하의 깊이

모세는 미디안 들판에서 양치기하던 중 애굽의 노예들에게 보내졌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 하늘나라에서 이 땅으로 보내지셨다. 모세는 애굽 왕자에서 처가살이 양치기로 전락하며 엄청난 자기비하를 겪었지만, 이는 인생의 우여곡절 속에서 강압적이고 필연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반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비워 이 땅에 오셨다. 모세의 자기비하는 죄를 짓고 죄인임을 깨닫는 과정에서 일어난 반면, 예수님의 자기비하는 죄 없으신 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루신 것이다. 이러한 자발적 자기비하는 모세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이유이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이 비교할 수 없이 감사하고 고마운 이유이다.

선민의 상태와 공동체의 형성

모세는 이미 지어져 있는 집(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들) 안에 들어가 봉사했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을 통해 집이 만들어졌다. 모세가 도착했을 때 이미 25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는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으로 불러내어져 생겨났다. 열두 제자, 수가성 여인, 혈루병 앓던 여인, 사도 바울 모두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모세는 혈통적으로 형성된 공동체에 왔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신다.

해방의 차원: 세상의 노예에서 성령의 자유로

모세는 애굽의 노예 상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냈지만, 그들의 노예 근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세상의 노예 상태로부터 우리를 불러내신다.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가치들을 붙잡고 놓지 못해 육체가 죽을까 봐 벌벌 떨며 노예처럼 살아가는 죄악의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주님의 해방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근본적인 해방을 이루어 주신다. 세상의 가치를 붙잡는 것이 죄악이며, 이를 붙잡는 죄의 상태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근본적인 구원이 일어나는 것이다.

통과하는 과정: 광야와 십자가의 의미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끌었고, 예수님은 우리를 십자가로 이끄신다. 광야와 십자가는 세상의 삶에 대한 관심을 죽이고 하나님께만 몰두하게 하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광야는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인간의 가능성을 차단하여 하나님께만 집중하게 했고, 십자가 역시 인간으로서 세상에 대해 가져야 할 관심을 다 죽여 버린다. 그러나 십자가는 주님께서 살과 피를 찢으시면서 일어난다. 십자가는 세상의 가치와 가족 등 마음의 모든 것을 찢어내고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는 결별의 사건이다. 모세는 광야로 데리고 나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마음을 찢어 세상과 결별하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신다.

최종 목적지: 가나안 복지와 그리스도 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복지로 이끌었지만, 결국 그들은 우상 숭배로 망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십자가를 지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망하는 법이 없다. 그리스도 안은 하늘까지 닿는 공간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돌리고 성령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피부로 느끼게 하시는 곳이다. 십자가 너머의 이 영역으로 마음이 들어가면, 하늘을 향해 있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으로 만끽할 수밖에 없다. 모세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예표적으로 보여준 것이며, 모세보다 월등하신 예수님의 우월하심이 우리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세상에서 유대인보다 더 대단한 삶을 살 수 있다. 나의 그리스도가 예수님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세상을 완전히 성공한 사람들이다.

본문 도입부

모든 관계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동일화의 신비로운 작용이 일어납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 아내는 별다른 노력 없이 영부인이 됩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창기들을 가까이 하심으로 죄 없으신 분이 죄인들의 친구로 불리셨습니다. 그러나 동일화의 작용은 거꾸로도 일어나 세리와 창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 누구도 아니고 오직 나사렛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습니다. 모세 말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참 좋다(히3:1~6)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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