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식의 무대를 향한 천국 커튼콜 (히 10:19~25)

📖 히 10:19~25시즌II_신약히브리서-2

설교 요약

예수님의 피 뿌림과 양심의 회복

대제사장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에 뿌려집니다. 이는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근본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피 뿌림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을 내 안으로 동일시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비로소 마음에서 진정한 양심이 생겨납니다. 이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외의 다른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누수 현상'을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마음의 공백과 흡입력, 그리고 소망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24시간 끊임없이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흡입력으로 작용합니다. 이 흡입력의 방향은 우리가 무엇을 가장 강력하게 의식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의식은 마음의 흡입력이 향할 대상을 설정하는 '과녁'과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들을 의식한다면, 마음의 흡입력은 그것들을 향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빗나감의 죄'입니다.

천국 의식의 중요성과 '커튼콜'

천국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 엄연한 영적 사실입니다. 마치 천만 원이 든 통장이 실제로 존재하듯, 천국 또한 실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마음의 흡입력은 천국을 향할 수 없습니다. 천국을 의식하는 것은 마치 연극이 끝난 후 배우들이 다시 나오는 '커튼콜'과 같습니다. 내 의식의 무대에서 천국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 보좌 우편에 이르심이라는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라 천국을 다시 불러내야 합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 그리고 소망의 굳건함

히브리서 기자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망과 연결합니다. '참 마음'은 마음의 흡입력이 작용하는 상태이며, '온전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식할 때, 마음의 욕구는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은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마음의 흡입력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의식이 천국을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임의 참된 의미와 '서로 돌아보아'

히브리서 10장 25절의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는 말씀은 예배당 중심의 해석을 넘어선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각자 흩어져 살면서 의식의 무대에서 사라질 수 있는 천국 현실감을 서로 고취시키기 위한 '커튼콜'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보이지 않는 천국을 의식의 무대에 세우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천국 현실감의 증대와 완전한 소망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시작하여 보좌 우편에 이르시는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의식의 무대에 끊임없이 불러내는 것은 천국의 현실감을 증대시킵니다. 이 반복적인 '커튼콜'을 통해 천국의 현실감은 눈앞에 보이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뚜렷하고 우선적이며 강렬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천국 현실감으로 가득 차, 세상 대상들에 대한 현실감이 사라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내 의식의 무대를 향한 천국 커튼콜>의 줄거리 : 대제사장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그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집니다. 그러면 나타나는 일이 바로 양심의 복원입니다. 이 양심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 이외의 대상으로 흘러가는 누수 현상을 견딜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하늘로 흐름을 유지하면 그 상태가 바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굳건히 유지되는 길은 새로 복원된 양심을 따라서 내 의식의 무대 위에 중단없이 천국을 불러내는 커튼콜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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