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감이 뒤집힌 자의 이해타산법 (히 11:24~40)
설교 요약
믿음은 현실감 뒤집기
믿음은 현실감을 뒤집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현실로 느끼던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로 느끼게 될 때, 이해타산의 방식이 전적으로 달라집니다. 박해와 희생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믿음의 사람들은 결코 손해를 참고 감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달라진 이해타산 상 그것이 이익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연한 단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올바른 계산법, 의로움
우리가 ‘의롭다’고 말할 때, 이는 곧 올바른 계산법을 따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의로움은 가장 큰 이익을 남기는 올바른 계산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희생, 충성, 봉사, 이타심 등은 이러한 달라진 계산법에서 비롯되는 결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바로 이 올바른 계산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모세의 선택, 계산된 희생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애굽의 왕자 신분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한 결과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부귀영화 대신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현실로 느끼고 계산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는 말씀처럼, 그의 선택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현실로 여기는 계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십자가, 마음의 출입문에 바르는 피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예식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예표입니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 세상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음의 출입문에 예수님의 피를 바르는 것이 곧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십자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자아의식이 유지될 때,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현실임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홍해와 여리고, 손해 보지 않는 길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넌 것은 손해 보지 않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현실로 느끼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길만 갑니다. 여리고 성 함락 사건은 우리가 세상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놓치게 되어 손해를 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분을 현실로 여길 때 문제는 저절로 무너집니다.
라합의 계산, 하나님의 값어치
기생 라합은 들려오는 소문만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유일한 참 신으로 믿고, 조국과 동포의 운명보다 하나님의 값어치를 더 높게 계산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값어치를 휴지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상태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라합의 믿음은 성령께서 보시기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비등할 정도로 하나님의 값어치를 높이 계산한 결과였습니다. 우리 역시 십자가의 주님을 기억하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현실로 여길 때, 라합과 같은 하나님의 값어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맷집과 인내, 뒤집힌 현실감의 증거
믿음의 사람들은 조롱과 채찍질,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 칼로 죽임을 당하는 고통까지도 손해로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뒤집힌 현실감 때문입니다. 보이는 소망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어려움이 닥쳐도 참음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맷집과 인내는 현실감이 뒤집힌 사람들의 결연한 단언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현실감이 뒤집힌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나요?
- ❓올바른 계산법을 따른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요?
- ❓모세가 애굽의 왕자 신분을 버린 것이 정말 계산적인 행동이었나요?
-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어떻게 마음의 출입문에 피를 바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나요?
- ❓하나님의 값어치를 높이 계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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